직선제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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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29 선언이후 여권의 구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민정당은 노태우대표위원의 폭탄적인 6·29선언에 고무받아 지금까지의 「순종체질」 에서 벗어나 언노 활성화· 당정개편등 여권내 구관계 재정립을 요구하는 대담한 발상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낭떠러지 끝까지 밀려 짙은 패배주의가 감돌던 민정당은 6·29선언으로 하루아침에 기사회생의 반전기세를 타고 있으며 이를 재집권의 목표로까지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구축과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해 부산하다.
지금까지 「신성부가침」의 영역처럼 보였던 당지도부에 대한 사항이나 여권의 금기사항이었던 광주사태의 수습책까지도 이젠 공공연한 논의가 벌어지고 오히려 야당보다 선제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상하에서 다같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리고 과거와는 달리 이런 민정당의 발언에는 「힘이 느껴지고 있으며 행정부측이 눈에 띄게 민정당 주장에 수용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6·29선언 이전에는 민정당측이 행정부, 특히 권력주변층에 끌러다닌 점이 많았지만 6·29선언 이후에는 그 반대현상이 보인다는것이다. 여권 내부의 구관계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다.
직선제로 승부를 내기로한 이상 선거를 치를 민정당의 발언권이 강할 수밖에 없고 노대표를 중심점으로 여권이 단합해야 한다는 공동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두환대통령이 조만간 총재직을 노대표에게 이양할 방침이라는 것 등은 이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통치, 노대표=정치」 라는 이른바 여권내 역할 분담론의 구도에 따라 전대통렁의 총재직 사퇴가능성은 그전부터 은밀히 추측돼 왔다. 특히 6·29선언 후에는 노대표가 이 선언을 가시적으로 실천하고 대야 협상력 확보를 실증하며 국민에게 신뢰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실감있게 노대표 총재설이 돌았다.
이같은 논의가 여권내 사실상의 방침으로 굳어진 것은 전대통경의 결단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전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야당총재들과의 회담에서 자신은 외교·안보· 통일분야만 관강하고 정치의 전권은 노대표에게 맡겼다고 한데 이어 지난 1일 특별담화를 통해 「초연한 입강」에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말해 자신의 의중을 비췄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여권을 노대표 중심체제로 한다는 측면과 함께 야당의 거국과도 내각 주장에 대한 회답이라는 일면도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소수이긴 하나 일부의원들과 권력주변에서는 서로 다른 이유에서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에 반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대의원들은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집권 종반기에 여권내 구심럭이 무너지고 따라서 걷잡을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벌써부터 공무원의 동요현상 등 범여권익 이완현상이 나타나는데 대통령이 「조연한 입장」에 설 경우 앞으로 선거를 어떻게 치를 것이냐는 논리다.
또 전대통령의 명예로운 정권 이양에 최대관심을 쏟고 있는 권력주변은 대통령의 권한 약화에 민감한 반응이어서 권력 핵심과 당사이에 미묘한 기류도 없지 않다.
민정당이 말하는 「과감한 발의 전환」 에 대해서도 권력주변, 또는 여권의 배후지원세력, 그리고 내각등은 미처 수용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래서 여권 내부는 알게 모르게 복잡미묘한 틈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차기집권이라는 큰 목표에서는 여권 내부가 공동인식을 하고 있지만 그 방법론상에는 정치집단인 민정당과 집행기관인 권력중추나 행정부간에는 현실적 괴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정당이 정치적 입강에서 사면·복권, 구속자 석방을 되도록이면 많이 해주길 바라나 내각은 행정적입장에서 그 고충을 토로하는 등으로 양목 사이에는 갈등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광주사태 수습책모색에 대해 권력 배후세력의 만만찮은 반발이 있었다는 소문은 그 점을 잘 반영한다.
말하자면 민정당으로서는 선거를 치려야 하고 그 선거를 이기기위해 과감히 물고 과감히 개혁해 나가자는 입장이지만 행정부등 여권의 다른 입장에서는 민정당의 요즘 움직임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비판과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이처럼 여권내에는 노대표 체제강롸↓선거태세 확립이란 공통된 인식이 있으면서도 그 구체적 방법이나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고, 그 과정에서 소외될게 분명한 그룹의 섭섭함도 뒤석여 있다.
6·29 선언후 민정당이 일괄사표를 내고 곧이어 개편이 단행될 것 같았지만 그것이 미뤄진것도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체제를 서둘러야 할 여권으로서는 개편을 계속 미룰수 만은 없는 처지다. 민정당이 잡고 있는대로 오는 15일께 노대표의 총재 추대가 이뤄진다면 그것을 계기로 당정개편은 대폭단행될 가능성이 크다. 설사 노대표의 총재 추대가 늦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과상관없이 개편은 어떤 형태로든 이뤄질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6·29선언을 하고서도 4·13체제를 그냥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정당에는 이미 국민의 신뢰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당정 색깔의 문민화라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많은 민정당 의원들간에는 지나친 군츨신의 중용이 국민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묵시적 공감대가 성립되어 있다. 또 그동안 있었던 개헌노선의 잦은 전환, 강공정치등에 책임있는 강경파 인사들도 물러 앉히 국민의 지탄을 받아온 정부내 일부인사들도 교체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당정개편의 「모양」이 민정당이 말하는 「과감한 전환」을 얼마나 내실있게 뒷받침 해주느냐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많은 당 안팎 인사들은 당정개편이 6· 29선언후 노대표가 맞을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6·29선언을 한 그런 결단과 배깡의 연장선 외에서 과감히 새 진용을 짜느냐, 아니면 이런 고려, 저런 눈치로 현실 타협적인 적당한 선의 개편을 하고마느냐를 두고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감한 개편엔 필경 여권의 내부 잡음과 반발이 따를 것이고 어정쩡한 개편이 되면 대국민어필이 떨어지고 민정당의원들의 불만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여권 내부의 이런 여러가지 문제는 기본적으론 전대통령과 노대표간에 결정 될 문제지만 이제부터 노대표의 결심과 구상에 더 많이 달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선거에 나설 사람은 노대표고 이기든 지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할 사람도 다름 아닌 노대표이기 때문이다.
민정당에는 벌써 각종 후보의 경선 주장 등 백화제방식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대표가 이를 어떻게 하나로 묶어 범여권을 결속시켜 나갈지 주목되는 일이다.<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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