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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경찰관 선고공판 판결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형사재판의 목표는 실제적 진실발견과 인권옹호에 있으며 사법부는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고 합니다.
최후의 보루인 이 법정에서는 최고의 질서가 요청됩니다. 아무리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이라 하더라도 법정에서만은 질서있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 법정질서는 우리모두의 이익을 위하여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할 것 입이다. 지난번 재판후 법정질서가 파괴되고 기물이 손괴된데 대해 재판부로서는 유감의 뜻을 표하며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범죄사실
이 사건 범죄사실에 관하여 살펴 보건대 피고인 조한경은 박종철군 고문당시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자리에 없었다고 변소하고, 피고인 강진규는 1차 가혹행위시에는 박군의 다리를 잡은 사실밖에 없고 2차 가혹시에는 욕조의 물이 차가와 욕조턱위에 올라가 있었다고 변명하고 있으며, 또 피고인 이정호는 상피고인 조한경의 지시에 따라 욕조에 물만 채웠을뿐 가혹행위시에는 14호실에서 하종문을 감시하고 있었다고 다투고 있다. 살펴보건데 피고인 황정웅·반금곤의 검찰 및 이 법정에서의 진술과 증인 하종문의 증언 및 현장검증 조서의 기재등에 의하면 피고인 조한경은 박종철군을 연행해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줄곧 모든 가혹행위를 지시하였고, 강진규는 1,2차에 걸친 가혹 행위시에 욕조 안에서 박군의 머리를 물 속으로 눌러 넣었으며 1차 가혹행위 직후 상피고인 조한경이 박군을 신문하는 사이에 잠깐 욕조턱위에 올라갔다 내려온 사실만 인정되고, 피고인 이정호는 2차 가혹행위시 박군의 다리를 묶은 수건을 들어올린 사실을 인정할수 있으며 동피고인이 하종문이 있던 14호실에 들어간 시각은 이 사건 범행후인 점심때쯤이라고 인정된다.
그러므로 위피고인들의 변소는 이유없고 이사건 공소사실에 나타난 범죄사실은 그 증명이 충분하므로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
◇ 정상론
피고인들의 이사건 범행으로 한참 피어나는 꽃봉오리같은 한 대학생이 푸른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였으며 그 부모 형제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슬픔과 실망을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 우리 모든 국민의 긍지와 명예감정을 여지없이 짓밟았으며 나아가 국가의 위신을 너무나도 크게 추락시켰다.
또 피고인들은 이 사건범행으로 피고인들의 가족은 물론 피고인 바로 자신들의 인생을 꺾고 말았다. 결국 이사건으로 모든 사람들은 꺾이고 상처입은 피해자가 되었으며, 우리들의 정신문화속에 인격에 대한 최대의 수치이며 모욕인 전근대적인 고문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정신적으로 가해음라는 자책도 금할수 없음니다. 이사건으로 이제 고문은 영원히 사라져 「고문하려는 사람도 없고 고문당할 사람도 없는 수사풍토」가 확립되어야 하겠으며 고문으로 인한 희비가 종식되는 뼈아픈 교훈이 되기바란다.
지금부터 피고인들과 피해자, 그리고 국민사이에 이사건을 가로두고 불태우던 증오와 대립은 해소되고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박종철군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하고 그 희생이 가지는 기념비적인 의미를 조용히 되새겨야겠다.
◇ 양형
피고인들의 양형에 관하여는 이사건 피해의 엄청난 결과와 피고인들이 이사건 범행에 가담하게된 동기와 원인, 그리고 피고인의 가혹행위 분담정도, 범행후 반성태도, 피해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여부와 그 피해자들의 감정 및 피고인들이 그동안 쌓아온 대공전선에서의 공로등을 종합하여 엄정한 법정신과 평균인의 건전한 상식 및 양심에 따라 다음과 같이 형을 선고한다.
이 사건에 관하여 박군의 연행시간, 상처원인, 전기고문여부, 박군의 소지품 분실등에 관해 일부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이 법정에 나타난 제반 증거상으로는 박군은 당일 아침 7시30분쫌 연행되었고 의사 황적준작성의 사체 감정서 기재에 의하면 전기 고문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여러군데의 상처는 시간적·공간적으로 볼 때 이 사건 범행의 주동자로 보이는 조한경·강진규의 폭행에 의하여 발생하였다고 보여지며 그 이외의 의문점은 형사소송의 당사자주의 구조와 부고부리의 원칙에 의하여 재판부로서는 더 이상 확인이 되지 않는다. 직권 탐지주의가 아닌 현재의 형사재판에서는 공소사실과 증거에 나타나지 않는사실에 대한 조사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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