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H·N 조합 따라 변종 생겨, 더 ‘독한 놈’이 인류 위협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H5N1 조류인플루엔자(노란색). 녹색은 감염 동물 세포.

H5N1 조류인플루엔자(노란색). 녹색은 감염 동물 세포.

조류인플루엔자(AI·Avian Influenza)가 잡히지 않고 있다. 2014년(7개월·1396만 수)에 비해 2016년(1.5개월·2600만 수·산란계 24% 살처분) 확산속도는 걷잡을 수 없다. 2년 사이 AI 바이러스가 독한 놈으로 변한 걸까, 아니면 초기대응에서 놓친 걸까. 농림축산식품부는 AI 바이러스 감염 철새가 중국, 러시아 북쪽에서 서해안으로 이동하면서 광범위하게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철새가 주범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저놈들을 어찌하나. 지난 12월 8일엔 중국에서 AI 바이러스에 5명이 감염돼 2명이 사망했다. 이놈들은 닭, 오리만이 아니고 사람도 죽이는가. 인류는 이놈들을 박멸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달래서 공존하면 그나마 다행인가.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조류인플루엔자(AI)

2014년 미국 농림부에 초비상이 걸렸다. 가축방역 선진국 미국에 AI 바이러스가 발생, 4000만 마리, 3조3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미국에 AI는 ‘강 건너 불’이었다. 한국 감염 닭들이 태평양을 날아올 리 없었다. 하지만 한국발 AI는 넘어왔다. 어떻게 태평양을 건넜을까. 미국, 한국 등 AI가 휩쓸고 지나간 32개국이 급히 모였다. 닭, 오리 국가 간 이동 데이터를 검증했다. 국가 간 닭 유통은 대륙 확산 원인이 아니었다.

연구진들은 세계 곳곳에서 AI 바이러스 흔적을 추적했다. 2016년 10월 저명학술지 ‘사이언스’에 보고된 AI 이동지도는 철새이동루트와 정확히 일치했다. 실제로 그 루트 철새 분변에서 AI 바이러스를 확인했다. AI감염 철새가 한국을 떠나 시베리아 호수, 북극 서식지에서 겨울을 보내고 북미로 이동했고 다시 그 루트를 따라 이번처럼 한국에도 왔다는 의미다. 새가 없는 곳은 지구상에 없다. 이제 AI는 지구촌 문제다. 방역전략도 변해야 한다. 농가차량과 작업자뿐만 아니라 하늘 철새도 신경 써야 한다. 점점 광범위해지고 독해지는 AI는 어떤 놈들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람들은 괜찮을까.

1997년 3월 알래스카 브레그미션 마을. 80년 전 사망한 에스키모 시신이 동토 2m 아래서 발굴돼 워싱턴 미 육군 의료센터로 옮겨졌다.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 전 세계 5000만명이 사망할 때 이곳 에스키모 마을에서도 90%가 죽었다. 육군연구소는 시신 속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이놈은 인플루엔자(Influenza·플루·Flu) 세 종류(A·B·C) 중 사람·조류·돼지 등을 감염시키는 A로 H1N1 종이었다. H(헤마글루틴)는 바이러스가 사람·조류·돼지 세포를 침입할 때 쓰는 ‘열쇠’다. N(뉴라미데이즈)은 감염시킨 세포 내에서 빠져나올 때 쓰는 ‘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변종은 H, N이 각각 16개와 9개다. 가능한 변종만 144개이고 조합에 따라 감염대상과 독성이 달라진다. H는 달라붙는 대상, 즉 감염대상을 주로 결정한다. 스페인독감(H1N1)은 인간을, 지금 한국을 휩쓰는 H5N8은 조류(닭·오리·철새 등)를 주로 감염시키지만 조류와 인간 사이 장벽을 넘어서는 경우도 많다.

감염 철새가 AI를 대륙 간 이동 시킨다.

감염 철새가 AI를 대륙 간 이동 시킨다.

H5N8은 2004년 태국 등 동남아시아를 덮친 H5N1의 후손이다. 2014년 한국발 H5N8은 감염 철새를 따라 북미, 유럽으로 확산했다. 지난해 잠깐 잠잠하더니 올해 6월 러시아, 몽골에서 다시 나타나 한국·일본·유럽·중동을 덮치고 있다. 왜 이렇게 자주, 독한 놈들이 오는 걸까.

2009년 예일대학 연구진은 ‘플로스(PLoS)’ 논문에서 H5N1이 지난 4년간 더 독해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H5N1은 고병원성으로 감염 닭을 28시간 내 전멸시킬 수 있다. 그런데 왜 감염 철새들은 죽지 않고 장거리를 날아갈 수 있을까. 날아가는 동안 잠잠히 대기하고 있다가 많은 타깃(닭, 오리 등)들이 모여 있는 농가에 도달하면 비로소 독성을 발휘한다고 추측한다.

실제 2014년 국내 동식물검역원 조사에 의하면 H5N8에 감염된 물오리와 큰고니는 죽었지만 청둥오리는 멀쩡했다. 새 종류에 따라 H5N8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정도가 다르고 AI에 감염돼도 장거리이동을 멀쩡히 하는 놈이 있다는 이야기다. 바이러스는 독한 놈은 천천히, 약한 놈은 빨리 퍼지는, 나름대로 최적 확산 전략을 가지고 있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 격이다. 지금 H5N8은 이와는 달리 고전파, 고치사율을 유지하고 있다. 보기 드물게 독특한 경우다. 정부발표 대로 장거리 이동철새가 국가 간 확산 원인이라 해도 국내확산은 철새 탓만을 할 수는 없다. 무엇이 확산을 키운 걸까.

닭에게 저항성 줄 시간·공간이 없어

뒷마당 닭장 문을 열고 모이를 던져주면 열댓 마리 닭들이 쪼르르 모여들었다. 그 틈을 타서 둥지에서 건져낸 달걀은 따끈따끈했다. 30년 전 이야기다. 당시 양계가 가내수공업이라면 지금은 대규모 공장이다. 국내 양계는 가구당 5만4000 마리로 매년 증가추세다. 좁은 철사케이지에 빽빽이 차있는 닭들은 AI에게는 더없이 쉬운 먹잇감이다.

식량농업기구(FAO)는 공장식 밀집 사육방식을 AI 확산 제1원인으로 꼽았다. 밀집사육 상황은 AI전파에 최적이고 게다가 닭, 오리 바이러스 저항력은 바닥이다. 자연 상태에서 동물과 바이러스는 서로 싸우면서 함께 진화한다. 지금 사육방식은 닭에게 바이러스 저항성을 줄 시간과 공간이 없다. 구제역 발생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렇다고 지금 공장식 사육방식이 70년대 뒷마당 닭장형태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양계산업이 지구촌 소요 단백질 20%를 공급하는 중요산업으로 면적당 최고 생산효율이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구제역 확산방지 핵심은 감염 돼지를 확인해 격리하고 살처분하는 강력한 초기대응이다. AI 바이러스도 구제역과 같은 방식으로 확산한다. 즉 감염사체에서 바이러스가 먼지처럼 피어난다. 이것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발생지역 살처분, 주변지역 격리방역이 기본이다. AI의 경우 철새가 바이러스 확산에 한몫을 한다. 그렇다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철새를 모두 격리, 방역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철새도래지와 농가접촉을 완전 차단해야 한다. 32개국 AI협의체는 북극 철새집결지와 각 국가 철새도래지 AI를 추적하는 국제공조를 역설한다. AI가 사람을 감염시키지는 않을까.

홍콩 구룡반도 재래시장에 위치한 조류시장은 대표적인 볼거리다. 거리를 꽉 채운 새장 속 온갖 새소리에 귀가 멍멍할 정도다. 매번 가는 곳이지만 이번 출장에서 필자는 그곳을 제외했다. 2013년 중국발생 H7N9 발생지역이 인간과 야생조류가 접하는 곳, 즉 조류시장이라고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했기 때문이다. H7N9는 당시 133명 감염, 43명(32.3%) 사망 피해를 낸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다. 이놈은 조류에서 출발했지만 조류는 죽이지 않고 사람을 감염, 사망시킨다. WHO는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H5N8을 걱정스럽게 관찰하고 있다. 양계산업 피해 때문만이 아니다.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AI(H7N9)에 의한 인간사망 뉴스가 마음에 걸린다. 역사상 가장 빠른 전염력을 가진 H5N8 AI가 스페인 독감 (H1N1)처럼 사람 사이에 전파된다면 대참사다.

2004년 태국에서 6200만 마리의 닭을 죽인 H5N1은 사람 116명 감염, 60명 사망 피해를 냈다. 50%에 가까운 사망률로 1918년 스페인독감 때보다 25배 높았다. 태국 H5N1은 다행히 사람과 사람 간 전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인플루엔자는 RNA 바이러스다. 이놈들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고 수를 불리는 과정이 복잡해서 변종이 잘 생긴다. 돼지는 인간(H1), 조류(H5) AI가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섞인 변종이 나오면 조류-인간-인간 감염이 더 쉬워진다. 특히 N 부분은 다른 N들과 잘 섞인다. 2009년 1만4000명의 사망자를 낸 멕시코 돼지독감(H1N1)은 인간·조류·돼지를 감염시키는 3종류 N들이 섞여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로서 H5N8 인체감염 가능성은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평상시 개인위생이 최선이다.

인플루엔자 전쟁, 승리 장담 못한다

공장형 밀집사육이 AI 확산 주원인이다.

공장형 밀집사육이 AI 확산 주원인이다.

인플루엔자와의 전쟁에서 인간은 승산이 있을까. AI 조류 감염은 신속 초기대응, 완벽 격리, 백신 접종으로 우선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AI 백신은 6개월이면 만든다. 최근 변종에 공통으로 듣는 백신과 해당바이러스가 없어도 H, N을 원하는 형태로 미리 만드는 백신(Reverse Genetics)도 개발 중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같은 놈이 온다는 보장이 없는 한 백신개발과 사용은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예일대 연구진은 AI변종에 대항할 저항 유전자가 조류(닭)에서 자연적으로 생길 확률을 높이는 방식이 문제해결 핵심이라 했다. 실제로 AI 저항성 병아리가 자연히 생겨남을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공장식 사육, 농장 밀집, 초기 대응 미숙)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놈들은 더 독한 놈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만약 전혀 새로운 H, N으로 무장한 인플루엔자가 닭, 오리 그리고 아직은 작은 확률이지만, 인간을 공격한다면, 백신을 만들 시간이 없다면, 방비책은 있을까. 천연두와 달리 수많은 철새·닭·오리·돼지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박멸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바이러스 폭풍』 저자 네이션 울프는 “인류의 최후 적은 바이러스”라 했다. 지구촌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