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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종서<본사 논실위원>|정치적 신흥민주국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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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29 노태우선언」은 제5공화정의 종언과「제6공화정」의 탄생을 예고하는 종소리다. 우리 헌정사에 이같은 국민적 공감대는 일찍 없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이렇게 신선한 충격을 준적도 없다.
노태우선언은 혁명적이다. 형식은 개혁이지만 명백한 정치혁명의 내용을 갖췄다. 혁명이냐, 개혁이냐의 갈림길에서「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방지한 결단이다. 희생을 아낀 아주 경제적인 혁명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마르코스」의 몰락은 이같은 예방조치를 거부한 댓가다.
노태우선언은 그동안 말과 행동으로 표시돼온 민주화요구를 거의 포괄하고 있다. 국민은 물론 야당과 외국에서까지 놀랄 정도로 함량은 만점이다. 그러나 민주화 도정에서 보면 아직「시작의 시작」에 불과하다.
군사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데는 3단계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통설이다. 자유화·민정화·민주화가 그것이다. 제l단계인 자유화는 권위주의 정권하에서의 자유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것은 국민이 빼앗겼던 자유를 되찾는 소극적 단계다. 제2단계인 민정화는 정권교체 과정에서 정치 지도자를 민간인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그때문에 이 단계를 정치의 비군사화 또는 민간화라고도 한다. 제3단계인 민주화는 민간정부주도하에 민주제도를 확대하고 정착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지금 우리는 제1단계가 막 시작되려는데 불과하다.
정부의 민간화를 거쳐 민주화단계에 들어선다 해도 우리 정치가 그렇게 밝을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정치저발전상태를 물려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가 2백년 걸러 이룩한 경제발전을 우리는 20년에 끝냈다. 그러나 정치는 그 20년동안 오히려 후퇴만 거듭했다. 그때문에 정치 위기는 해결되지 않은채 누적돼 있다. 노태우선언이 무두 실현된다 해도 정치 위기는 절반밖에 해소되지 않는다.
정치 발전에는 위기가 따른다. 우리정치 위기는 대체로 5개로 요약된다. 첫째가 국민간의 일체성 결여다. 지역간·계층간, 그리고 지배 엘리트와 대중사이에「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이 부족하여 국민적 결속이 약하다. 둘째는 정권의 정통성 결핍이다. 유신이래 정부는 정통성 도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때문에 정치불안은 만성화돼 있었다.
세째는 대중참여의 과잉이다. 국민의식이 높아지고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많아졌지만 좀처렴 해결되지않았다. 이것이 대중의 욕구 불만과 정치에의 도전·참여로 나타난다. 네째가 분배의 불균형이다. 경제성장에 따라 사회적 부는 증대됐으나 공정분배는 실현되지 않았다.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된 빈곤층의 불만은 누적될 수밖에 없다. 다섯째는 권력 승계의위기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한번도 없었고 선거때마다 부작용이 컸다. 1인 장기집권이 권력 승계의 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
노태우선언이 순조롭게 풀린다면 정통성 위기와 권력 승계 위기가 해소되고 일체성 위기는 개선된다. 그러나 나머지는 그대로 남는다.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하에서는 위기가 잠복상태에 있지만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한꺼번에 폭발한다.
민주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러나 비관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그동안 축적해온 민주주의 저력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지난 40년간 정치는 비민주 상태에 있었지만 교육에선 민주주의를 가르쳐 왔다. 그결과 민주시민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사회의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다.
경제성장에 수반하여 교육·종교·문화도 발전했다. 그 결과 진보적인 학생·종교인·지식인이 민주운동을 선도하게 됐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민주세력을 동원할수 있는 민간체제까지 결성돼 있다. 6·10사태 이후의 시민운동은 그 위력의 과시였다.
비록 단기간이었지만 민주주의 실험을 거쳤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흔히 이승만시대는 유사민주주의, 장면시대는 자유민주주의, 5·16이후는 군사권위주의로 규정된다. 장면 민주주의는 일본의 군국주의 독재에 선행됐던 대정민주주의, 독일의 나치스 전체주의 전단계였던 바이마르공화정에 비유된다.
민주주의가 한두차례의 독재를 거쳐 제대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역사의 관례처럼 돼있다. 프랑스대혁명도「나폴레옹」독재와 부르봉왕조의 부활을 거쳐 민주주의로 부활됐다. 청교도혁명으로 시작된 영국 민주주의는,「크롬웰」독재를 거쳐야 했다. 우리도 4·19 민주주의와 그후의 비민주주의 경험을 토대로 지금 시작된 재민주화(redemocrtiztion)를 성공시킬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정치인들의 헌신적 결단이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혁명에는 항상 반동이 있다. 진보는 보수에 의해 저항받는다. 그러나「6·29선언」앞에 하나가 됐던 국민적 힘으로 민주화를 강력히 밀고 나가야 한다. 이번 기회에 완벽한 헌정제도를 마련하여 체제문제를 종결짓고 앞으로는 발전과 건설에 겨레의 총력을 결집시켜야 한다. 다시는 민주화투쟁이 없게 해야 한다.
대원칙은 합의됐다. 여야는 빨리 세부사항을 마련하여 민주화일정을 서둘러 나가야한다. 정권에 도전할 정당들은 대중적 지지 기반을 질적·양적으로 확대하고 훌륭한 정책을 개발하여 축적해 두어야 한다. 나라가 잘되고 못되고는 정책의 질과 수준에 달려있다.
경제 기적으로 신홍공업국(NICS)이 된 우리는 이제 정치 기적으로 신홍민주국이 돼야 한다. 우리 앞을 막아섰던 검은 장막은 걷혔다.「제6공화정」은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세계로, 미래로 약진하는 민족의 도약대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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