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민의 수렴 못한 것이 아쉽다"|대행진 맞아 긴장감도는 비상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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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야영수회담으로도 돌파구를 열지 못한 정국은 6·26 대행진을 맞아 긴박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여권은 대행진의 파급을 최소화하면서 국면을 정치협상 쪽으로 돌리기 위한 수습방안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고, 야권은 대행진 후의 상황을 계산하면서 일단 강경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6·10」대회이후 중산층을 포함한 민심의 동향을 체감한 민정당은 요즘 고민하고 초조해 하는 모습이 역연하다. 작년 이맘때, 아니 한 두달전에라도 지금처럼만 했더라면 오늘의 이런 상황이 초래됐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절실하다.
노태우 대표위원은 거의 매일 50명 이상의 당소속 의원들을 만나고 짬짬이 외부인사와의 접촉도 벌이고 있다.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얘기며 『한달 사이에 10년은 더 늙어버리는 것 같다』고 푸념할 정도다.
의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름대로의 시국타개 아이디어를 갖고 당직자들을 찾는가 하면 저마다 오늘의 시국상황을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다. 한 당직자는 『진작 이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고 자탄했다.
대야강경발언을 일삼아 오던 소위 「친위대」는 눈에 띄게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4·13철회』『직선제라도 하자』 『야당 할 각오를 해야한다』는 터부성 발언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을 내 손으로」라는 국민열망이 대세라는 사실을 시인하기도 한다.
따라서 민정당은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대통령선거인단 선거를 통한 정부이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그에 얽매여 시국타개를 그르쳐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사실상 4·13이 철회된 만큼 그에 근거한 전당대회도 의미를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다만 야당이 6·10대회의 취소를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어떻게 체면과 타이밍을 잃지 않고 노대표의 「후보사퇴」를 시국돌파의 교두보로 이용할 것인가 고심하는 인상이다.
○…민정당이 마련하고 있는 시국 수습안은 6·10대회이후 상당히 큰 진폭으로 변해왔다. 『이만큼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이 시간이 감에 따라 한결 조심스러워지면서 양보의 폭도 점차 넓어지고 깊어지는 느낌이다. 「6·26」평화대행진과 그 후의 양상에 따라서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수습방안의 발상이나 인식의 출발점이 획기적으로 변화된 내용의 시국수습책이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 민정당의 수습방안은 당내에서 수렴된 의견과 각계와의 대화를 해온 청와대의 구상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나올 전망이다.
민정당은 처음 현행 헌법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와 차기정부의 과도적 성격 명시의 수준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연내개헌 불가피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당대 당이든, 개별적이든 민주당을 제외한 범야권의 흡수로 내각제개헌을 관철해야한다는 신합법개헌론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려면 무리가 불가피 하며 그 후 치러야 할 총선은「2·12」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워질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선택적 국민투표에 대해서는 직선제로 결론이 날게 뻔하므로 그럴바에는 바로 직선제를 받는게 낫다는 이유로 거부감이 많다.
88올림픽이후 직선제를 실시하는 것을 전제로 야당과 타협, 금년내 개헌하되 다만 부칙조항을 통해 차기 과도정부의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해 내년 2월의 평화적 정부이양을 하도록 하자는 안도 있다. 이밖에 적절한 시기에 내각제 하나만을 국민투표에 회부하자는 여당식 선택적 국민투표를 거론하는 측도 있으며 변형된 비상조치나, 차라리 직선제를 당장 받아들이라는 측도 있다.
소선거구제와 비상선거관리내각을 받아들이면서 김대중씨등의 사면·복권과 내각제를 바터해 관철하자는 안도 있고 연내 국회를 해산, 내각제와 직선제를 걸고 승부를 짓자는 등 백가쟁명식의 수많은 수습안이 민정당에는 횡행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안중 어떤 것이 채택될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촉박한 시한과 바로 정권을 건 선택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회해산→총선실시론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수습방안을 둘러싼 민정당의 고민도 오래 끌 형편은 아니며 내주에 들어가면 어차피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은 수습안이 마련되면 여야대화에서 이를 제시, 야당과 협상할 생각이지만 야당이 현재 대화를 거부하고 있어 끝내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발표할 방침이다.
○…민주당은 6·26 대행진이 정국향방을 가름 짓는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즉 이번 대행진이 민주당이나 국민운동본부의 기대대로 압도적인 숫자가 대행진에 참여해서 피플파워를 과시하게 되면 모든 정치 일정이 야당측의 생각대로 추진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대행진의 규모가 여권에 심리적 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국민적인 요구를 전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여야영수회담을 「결렬」이라고 생각하는 민주당측은 여권에서 보다 확실하고 결정적인 양보를 얻어낼 수가 있을뿐 아니라 이것을 발판으로 해서 대통령직선제 개헌까지 밀어붙일 수가 있으며 그것이 안되면 선택적 국민투표까지는 일거에 확보할 수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처럼 피플파워를 과시하는 장외전략을 밀어가는 방식에는 민주당 내부, 또 민주당과 국민운동본부 등 재야학생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난국의 마지막 수습은 결국 정치적인 무대 위에서 정치적인 절충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김영삼 총재 쪽에서는 6·25대행진이 앞으로의 정치절충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계기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김 총재측은 여권이 구상하고 있는 수습안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번 대행진의 결과로 여권이 4·13의 명시적인 철회와 임기내 개헌을 약속하는 선으로 물러선다면 즉각 정치절충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당내 동교동쪽이나 일부 강경파는 정부·여당의 결정적인 양보를 얻어낼 때까지 강경전략을 계속 구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사면·복권문제가 걸려있는 김대중씨측에서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동교동 내무에서는 김대중씨가 정치적 협상의 여지가 있는 신축성을 갖고 있음을 은근히 알리면서 그의 사면·복권과 앞으로의 정치적 수습에서 그의 영향력이 관건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의 이와 같은 생각이 재야나 국민운동본부쪽의 의도와 합치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민주당·국민운동본부·운동권은 4·13 호헌조치 철폐와 임기중 개헌·독재타도와 같은 구호만 사용했는데 이것이 개헌을 바라는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어필할 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행진에 있어서는 국민의 힘을 보다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전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대행진을 보는 야권내부의 시각에는 저마다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게 사실이다.
대행진이 정치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적절한 규모」에서 진행된다면 민주당등은 그 다음의 정치적 수습에 나서기가 용이해질 것이며 정치적 타개의 길이 열릴 수가 있다.
그러나 대행진이 예상밖의 돌발사건에 휘말리거나 민주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 간다면 그 물줄기가 어디로 흐를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상황은 정부측의 비상한 조치를 유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야당측은 대행진을 기대와 긴장과 불안이 뒤얽힌 눈으로 보는 셈이며 어쩔 수 없이 빠져 들어가는 측면도 있다고 할 것이다.

<안희창·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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