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냉이가 과자·치킨과 만나면…요즘 대세 '독특한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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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냉이는 그간 억울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라는 작물이지만 ‘와사비’라는 일본어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고, 톡 쏘는 매운 맛 때문에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렸다. 초밥집에서 조차 ‘와사비를 빼고 달라’ ‘조금만 넣어 달라’ 주문하는 손님들 때문에 외면당하기 일쑤. TV 예능 프로그램에선 음식 사이에 고추냉이를 넣고 누구나 싫어하는 벌칙 도구로 사용했다.

이처럼 생선 살 밑에 숨어 있는 향신료에 불과했던 고추냉이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고추냉이를 활용한 레시피를 소개하는 블로그나 유투브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추냉이 맛을 낸 외식 상품도 인기다. 매운맛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입맛이 코끝을 얼얼하게 하고 한쪽 눈을 찡긋 감게 만드는 고추냉이 영역까지 넘어 온 것이다.

고추냉이는 특유의 알싸함 때문에 느끼한 음식들과 잘 어울린다. 삼겹살을 먹을 때 고추냉이를 조금씩 올려먹는 방법은 요즘 식도락 네티즌들 사이에서 ‘꿀팁’으로 통한다. 이 방법은 지난 7월 tvN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삼겹살 맛집 ‘육전식당’ 편을 통해 더욱 화제가 됐다. 이밖에 ‘명랑회관’ ‘일미락’ 등의 유명 고깃집에서도 쌈장과 함께 고추냉이를 제공하고 있다.

와비코 치킨. [사진 도담치킨]

와비코 치킨. [사진 도담치킨]

‘치킨버스’ ‘투존치킨’ 등의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일명 ‘와사비치킨’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브랜드에 따라 메뉴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치킨과 고추냉이의 조합이 특징인 것은 비슷하다. ‘도담치킨’도 최근 닭고기 위에 파 채와 양파를 올리고 와사비드레싱을 뿌려 먹는 ‘와비코치킨’을 출시했다. 도담치킨 관계자는 “고추냉이라는 재료 때문에 거부 반응이 있을까 우려도 했지만 요즘은 주문 3건 당 1건 꼴로 ‘와비코치킨’을 시킬 만큼 인기”라고 말했다. 치킨 덕후들 사이에선 고추냉이의 톡 쏘는 향과 맛이 여러 개를 연속해서 먹으면 다소 느끼할 수 있는 치킨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다.

빙그레제과는 지난 9월 ‘꽃게랑 고추냉이’를 출시했다. 매운맛 스낵 제품군을 늘리면서 내놓은 신제품이다. 기존의 꽃게 맛 과자에 고추냉이의 알싸한 맛을 첨가했다. 과자 색과 포장 디자인에도 고추냉이의 초록색을 적극 활용했다. 일본에서는 다양한 고추냉이 맛 과자들이 오래전부터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 대형 제과회사가 고추냉이 제품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월 출시 첫 달에 1만1000박스, 11월에는 2만7000박스가 팔렸다. 빙그레 측은 “11월 총 매출은 2억원으로, 꽃게랑 오리지널 월 평균 매출이 3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짧은 시간에 이례적인 인기를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에는 해태제과가 ‘자가비 고추냉이 맛’을 내놓았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최근 1~2년 새 타코와사비와 같은 음식이 인기를 끄는 등 고추냉이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부분에 주목했다”며 “출시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독특한 맛을 즐기는 젊은 층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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