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지는 위안화, 100위안=100홍콩달러 눈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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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20일 홍콩 세븐일레븐 매장 밖에 ‘100위안=100홍콩달러’ 안내판이 붙어 있다. [사진 바이두]

지난 20일 홍콩 세븐일레븐 매장 밖에 ‘100위안=100홍콩달러’ 안내판이 붙어 있다. [사진 바이두]

1위안의 가치가 1홍콩달러와 같아지는 ‘패리티(등가)’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트럼프 당선 이후 약세 현상 지속
홍콩 상점에선 위안화 받기 꺼려
1대1로 가치 매긴 편의점도 등장
성장 둔화 겹쳐 자본유출도 우려

최근 홍콩 내 상점들은 위안화 받기를 꺼리고 있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강 달러, 약 위안 현상이 계속되자 홍콩 내 편의점 체인은 위안화보다 홍콩달러를 높게 쳐주기 시작했다. 지난 16일부터 홍콩지역 내 모든 세븐일레븐 매장에는 ‘100위안=100홍콩달러’라는 안내판이 붙기 시작했다.

세븐일레븐은 홍콩에서 총 900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 편의점 체인이다. 이날 홍콩외환시장에서 위안화 가치가 1위안당 1.12홍콩달러로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세븐일레븐은 이보다 12% 더 낮게 위안화 가치를 평가한 것이다. 또 다른 편의점 체인인 서클K는 ‘100위안=105홍콩달러’란 안내문을 붙이고 영업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위안화 가치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심리가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중국 정부의 위안화 국제화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한 방 먹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홍콩달러가 위안화 가치를 앞지른 것은 10년 전이다. 홍콩은 1983년부터 미국 달러에 통화가치를 고정하는 페그제를 실시하고 있다. 달러당 7.75∼7.85홍콩달러를 밴드로 정하고 이 사이에서만 환율이 움직이도록 한다. 홍콩달러는 고정환율로 묶여 있지만 중국은 2005년 달러페그제를 폐지하고 관리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2005년 7월21일 중국 정부가 위안화에 대한 변동환율제를 처음 실시할 때만 해도 100위안=99.6홍콩달러에 거래됐다. 당시 1달러는 7.8홍콩달러에 거래됐다. 2007년 1월 5일 이후 위안화는 홍콩달러보다 통상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공식환율은 위안화가 약간 강세지만 곧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 블룸버그 통신이 43명의 전문가에게 조사한 결과 위안화 가치는 내년 1분기 달러당 7위안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안화 추가 약세 전망이 높은 만큼 위안화로 들고 있는 것보다는 홍콩 달러를 들고 있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미국 달러화와 견줘 역내 위안화 가치는 6.95위안(26일 기준)으로 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홍콩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지난 5월까지만 해도 1.19홍콩달러였지만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현재 1.12홍콩달러까지 떨어졌다. 홍콩 금융계에서는 현재 미국 달러에 고정돼 있는 홍콩달러 환율을 위안화에 고정시켜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가파른 위안화 약세는 중국 경제성장 둔화 우려와 맞물려 자본유출까지 심화시키고 있다. 26일 홍콩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환율 변동성 위험을 줄이기 위한 외환파생 거래가 늘며 11월 중국 본토 외환시장에서 중국 위안화 거래량이 대폭 늘었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SAFE)에 따르면 지난달 외환 거래량은 한 달 전보다 42.33% 늘어난 2조3200억 달러(약 402조원)다. 중국금융선물거래소 자오 칭밍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위안화 약세에 대한 기대가 외환 거래 수요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암울한 전망은 이뿐만이 아니다. 투자은행 HSBC는 자본유출로 위안화가 절하되고, 다시 자본유출이 일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HSBC는 ‘2017년 위안화 전망’에서 새해에는 중국의 자본유출 압박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높은 부채 수준과 자산 버블,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에 대한 우려 등으로 위안화가치 절하 가능성이 커지면 자연히 위안화 투자심리는 위축된다는 것이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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