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대기업 중 첫 탈퇴…전경련 ‘해체 도미노’ 시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최순실 게이트’로 존폐 논란에 휘말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탈퇴 러시가 시작됐다.

삼성, 특검수사 마무리 후
SK도 탈퇴, 현대차는 유보
4대 그룹 회비가 전체 70%
탈퇴 러시 땐 존속 어려워
“이미 시대적 소명 다했다”
쇄신 추진할 명분·동력 상실

그 첫 테이프는 지난 6일 국회 청문회에서 구본무 회장이 직접 “전경련은 헤리티지재단처럼 (싱크탱크로) 운영하고 각 기업 간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의견을 밝힌 LG그룹이 끊었다. LG는 27일 오전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 말로 전경련 회원사에서 탈퇴하기로 하고 최근 전경련 측에 이 같은 방침을 정식으로 전달했다”며 “2017년부터 전경련 회원사로서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며, 회비 또한 납부치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LG그룹의 이번 발표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전경련 탈퇴의사를 밝힌 삼성·LG·SK 등 3개 그룹 중 처음으로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SK그룹도 이날 LG의 탈퇴 발표 직후 “기존 탈퇴 입장에 번복은 없으며 전경련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내년 회비도 안 낼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청문회장에서 “회비도 안 낼 것이며 전경련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은 그룹에 대한 특검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점에 전경련 탈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당분간 전경련 탈퇴는 하지 않겠지만 활동도 하지 않고 회비도 내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KT도 이날 “이달 초 전경련 탈퇴의사를 전했고, 내년부터 회원사로 활동하지 않고 회비도 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진과 한화그룹은 이날 “특별한 계획이 없다”는 반응만 내놨다. 롯데는 탈퇴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전경련 회장사인 GS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회원사들의 뜻이 모이면 그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탈퇴 러시는 전경련 유지와 운영에 치명상을 입혀 해체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 전경련이 걷은 전체 회비(492억원) 중 70%가량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의 한 해 예산을 위한 수입은 회비 492억원에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빌딩 임대료 400억원 등 약 9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빌딩 건축 때 발생한 금융비용(원리금 상환)과 빌딩 관리에 400억원가량 비용이 들기 때문에 4대 그룹의 회비 납부 중단만으로도 전경련은 사실상 존속 자체가 어려워진다.

전경련 회원사들의 탈퇴 러시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지난 10월 본지의 긴급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요 10대 그룹의 고위 임원들은 익명을 전제로 현재의 전경련에 대해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회원사를 위해 해 준 것은 없고 정권의 하수인·창구 역할만 했다” 등과 같은 부정적 응답과 함께 조직의 대대적 변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다만 앞장서 전경련 탈퇴나 변신을 주장하는 데는 주저했다. 당시 한 기업 임원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심정”이라며 “누군가가 먼저 방울을 달아 준다면 아마도 다들 따라나설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잇따른 전경련 탈퇴 선언은 전경련의 쇄신작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전경련 사무국은 현재 기획본부를 중심으로 조직 쇄신안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무더기 탈퇴가 이어질 경우 쇄신안이 나오기도 전에 해체를 맞을 수 있다.

그간 정·재계와 학계에서는 전경련을 미국의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처럼 변신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경련 사무국의 기능과 규모를 대폭 줄여 관계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에 합병시켜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민간 싱크탱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현대차그룹이 “회비는 내지 않겠지만 지금 당장 전경련에서 탈퇴하지도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 역시 전경련 내에 남아 있어야 개편 방향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주요 회원사들이 나가 버린 상태에서 사무국 직원을 중심으로 근본 개혁을 한다는 것은 무리”라며 “전경련은 이제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