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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절반은 점… 주사위 확률처럼, 점과 점은 독립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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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26면

석기유물: 돌에 새겨진 숫자괘. 여기서는 1과 6, 두 개의 숫자만 사용되고 있다.

점 보신 적 있으신지? 점을 쳐보기도 하셨는지? 시대에 맞지 않는 질문 한다 하시겠다. 그래서인가. 많은 사람들이 주역을 읽지만 드러내놓고 읽지는 않는다. 하지만 칼 융(C. Jung) 같은 지성이 주역 점을 쳤다는 것에는 은근한 자부도 갖는다.


이렇듯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주역의 권위적 이해를 강화시킨다. 어느 대학 강사가 대학생에게 이리 가르쳤다. “성인이 막대기를 앞에 놓고 궁구해 주역의 점사를 얻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강사가 말하는 막대기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주역 책을 보면 그림이 나온다. 지난 번 보았던 정괘(鼎卦)의 경우 로 표현된 것이다. 괘상, 또는 괘획이라고 부르는 괘 그림이다.


저번 글에서 그 그림에 붙은 효사 하나를 봤다. 鼎有實 我仇有疾 不我能卽 吉. “솥 속에 음식이 튼실하다. 나의 적은 병이 있어 나를 공격할 수 없으니, 길하다.” 강사는 이 문장이 바로 저 괘상에서 연역되어 나왔다는 것이다. 그림 속에 뜻이 있고 그 뜻이 점사로 연역되었다는 주장이다. 2천년 넘게 그런 이해가 중국과 조선을 덮었다. 다산 정약용도 매혹되어 7년을 바쳐 책을 썼다. 『周易四箋(주역사전)』이 그것인데, 잠시 후 보게 될 점사의 독립성 문제를 오해한 것이다. 오류로 시작해서 오류로 끝났지만 한국의 주역학계에서는 높이 받들어진다.


주역의 오해, 점과 점사의 독립성 문제주역을 알려면 두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점이란 무엇인가. 주역의 언어는 본질이 무엇인가.

서주유지계수. 서주(西周) 시대의 갑골문에 새겨진 숫자괘다.

오늘은 점이다. 실제로 들어가자. 필자는 콩을 집어서 점을 치기도 하는데 중요한 문제가 하나 개입되니 그것으로 설명을 드리겠다.


먼저 콩을 담은 그릇을 앞에 둔다. 내심으로 약속을 두 가지 한다. 점치는 방법의 확정이 첫째다. 예를 들면 ① “모두 일곱 번 집는다. 처음 여섯 번으로 6획괘 즉 괘상을 그린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6개의 효사와 1개의 괘사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데 쓴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익숙하면 이 형식은 밟지 않아도 된다. 그러고 나서 ② 마음속으로 질문한다. 이를테면 “오늘 밤 과음하면 배탈 아니 날까요?” 같은 것.


이젠 실전이다. 콩을 여섯 번 집어서 수를 헤아리니 처음엔 1, 두 번째엔 2, 그다음엔 3, 5, 7, 8 순으로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홀수에는 양 부호()를, 짝수에는 음 부호()를 대입시킨다. 그것을 위로부터(아래로부터 해도 좋다) 시작해 차례대로 그리자. 정괘 가 나온다.

서주시대 봉호(鳳鎬) 지역에서 발견된 숫자괘. [사진 장정랑]

이제 6개의 효사와 하나의 괘사, 모두 7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된다. 손으로 집은 콩 개수를 7로 나눈다. 8개를 집으면 7로 나누니 1이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약속한 대로 첫 번째 효사를 점의 답으로 한다. 만약 7이 나오면 괘사를 답으로 한다.


콩을 헤아리니 모두 9개가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우수리가 2다. 두 번째 효사가 질문에 대한 주역의 답이다. 조금 전 보았던 그 효사다. 九二 鼎有實 我仇有疾 不我能卽 吉. 당신은 걱정을 접어도 된다. 마음껏 마셔라. 배탈은 아니 날 것이다. 하하. 하지만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그 문제는 묻지 않고 배탈 여부만 질문했다. 참, 九二는 이렇다. 九는 양효(陽爻)를 말한다. 즉 ()이다. 六은 음효(). 二는 두 번째 효사라는 뜻이다.

전국시대초죽서(戰國時代楚竹書). 오른쪽 첫 열의 여섯 글자가 주역 혁괘의 괘상을 그리고 있다. [사진 상해박물관장]

여기서 문제가 두 가지 나온다.


1) 7개의 점사(6개의 효사와 1개의 괘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2) 마음속으로 점의 방식도 결정하고 질문도 했다. 과연 어떤 이유로 그 답을 믿을 만하다고 보는가.


첫 번째 문제부터 보자.


답은 분명하다. 중학교 때 배웠듯이 주사위 확률은 모두 독립적인 사건이다. 점도 그렇다. 고로 점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주사위를 던져 1 다음 2 나오고 3, 4, 5, 6이 나오며, 다시 그다음에 순환적으로 1, 2, 3, … 이렇게 연결되는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역에서는 믿는다. 믿음의 정도도 굳건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 이 하나만으로도 3천년을 내려왔던 주역 해석의 방식은 무너진다. 권위적인 해석은 유파가 무엇이든, 점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은 데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학자들도 대부분 7개의 점사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독자들은 알 수 있다. 그런 이해는 틀렸다.


아쉽게도 학자들은 쉽게 고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기반을 흔드는 난처한 문제에는 아예 눈을 감는 학자를 여럿 봤다. 3천년은 무겁고 권위는 견고하다.


점이 서로 독립적이기에 점에 붙인 점사 또한 독립적이다. 이것이 주역의 반(半)이다. 점사가 서로 독립적이라고? 이상하다. 그렇다면 왜 저 정괘에서 정(鼎)이란 글자를 모든 점사가 다 공유하는가. 서로 관계가 있기에 그런 거 아닌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다음 글에서 밝히겠지만, 정(鼎)자(字)를 공유하는 까닭은 역경 언어의 본질 때문이다. 역경 언어는 본질이 은유다. 그래서 정과 같이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은 쉽게 통일되는 경향이 있다. 하나의 괘에 모여 있는 모든 점사를 핵심 단어 하나로 통일하려는 노력이 BC 10세기경에 있었다. 그 노력이 곧 주역의 성립 과정이다.


점의 질문과 답에 누가 귀를 기울이는가두 번째 의문을 보자. 주역을 넘어서서 세상의 숨겨진 질서에 관한 것이다.


내면의 소리는 어떻게 점사와 연결되는가. 콩을 집는 것은 과연 어떤 이유로 답을 알려주는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잘 알려진 것으로는 융의 공시성(synchronicity) 이론이 있다.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으로 믿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이 같은 시간대에 갖는 의미의 상징적인 일치.” 이것이 공시성인데 인과율과는 다른 설명이다. 솔직히 말해 그런 개연성 있는 일을 많이 겪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하자. 반상의 향기 글 중에서 김인 국수 이야기를 읽으셨는지? 설악산에서 찍은 김인과 조훈현 사진을 기억하시는지?(사진 1) 두 사람의 배경에 두 개의 봉우리가 크게 올라서 있었다. 당시 두 기사는 한국 바둑의 두 봉우리. 사진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 잡혔다. 이는 절대 우연이 아니다. 사진작가 육명심의 미당 서정주 사진을 떠올려보시라.(사진 2) 관악산을 배경으로 쭈그려 앉은 미당. 그 사진이 시인으로서 미당의 크기를 알려준다. 세상사 참으로 다양한 기운이 가득한 속에 변화한다. 좁은 인과율을 넘어선 우주의 인과율에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

콩을 집는다 했는데, 콩은 집는다고 집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콩은 집히는 것”이다. 콩을 집을 때엔 손에 강력한 기운이 밀려온다. 마음대로 집을 수 없다. 무당 아니냐고? 아니다. 기를 알면 누구나 느낀다.


우리는 당구공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갖가지 기운에 의해서 부대끼는 존재다. 우주에 편재한 온갖 기운이 우리를 휘감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불교에서는 십일체입(十一切入)이라 하여, 열 가지 큰 힘이 우주에 편재해 우리 몸을 관통하고 있다고 본다. 전자파, 중력파,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외에 세상만사에 영향 끼치는 힘을 열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지수화풍청황적백공식(地水火風靑黃赤白空識)’이 그것이다. 추상적인 게 아니다.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 않다. 『기와 인간과학』 하나만 읽어보시라. 1988년 유아사 야스오(湯淺泰雄) 등 일본과 중국의 학자 23명이 심포지움을 열어 발표한 연구논문집이다. 아직 하나로 꿰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일본과 구미의 현재 수준은 만만찮다. 우리야 한참 밑이고 학문적 진지함은 크게 결여되어 있다.


점집이 많다고 가끔 사회문제가 되곤 한다. 점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 그에 대한 과학적 기초가 없는 사회는 무의미한 문제 제기만 되풀이할 뿐이다.


역경은 숫자괘에서 비롯되었다오랜 세월 주역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많았다. 성인이 만든 것이라는 설이 가장 넓게 퍼졌고 또 유학의 배타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한가.


1980년 중국의 『고고학보(考古學報)』에 장정랑(張政?)이 숫자괘의 발견과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처음엔 아무도 숫자괘가 주역 괘상의 본래 그림임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점증하는 자료를 어찌 부인하겠는가. 이제는 의심의 여지없는 증거가 되었다. 성인의 막대기설은 환상이다. 여기서 설명하기엔 길지만, 사실 논리학자 괴델(K. Godel)의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를 적용하면 이런 고고학적 증거조차도 필요가 없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괘상은 숫자괘로부터 변천되었다. 점의 확정은 숫자로 했고 처음엔 1~10의 숫자로 표시하였지만, 수백 년 세월이 흐르면서 홀수와 짝수를 나타낼 때 1(一)과 가운데가 갈라진 숫자 6(∧)으로 표시법을 단순화했고 그다음엔 다시 1과 6을 음양 부호로 바꾸었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죽서(사진)를 보라. 주역 혁괘(革卦)를 쓴 것인데, 음 부호(--) 대신 6(∧)이 선명하다. 1973년 발굴된 서한 말기의 마왕퇴 주역 백서도 1과 6으로 표시하고 있다.


명백한 숫자괘의 증거 앞에서도 한국의 주역 연구는 눈을 닫고 있다. 권위에 갇힌 학자들과 술사들. 성인의 모델에 기댄 쓸모없는 권위가 모순과 신비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마지막 글이 남았다. 주역의 언어, 그 본질에 대해서다. 이게 주역의 전부야? 그런 의문 하실 것이다. 전부다.


문용직 객원기자·전 프로기사moon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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