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고대하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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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29면

엄마처럼 돌봐준 큰딸 나탈리와 함께.

여행을 좋아한다. 단순히 멋진 풍광 때문만은 아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현지의 풍토와 인심은 기본, 역사 및 배경지식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를 하고 나서야 발걸음을 떼는 여행자다. 이처럼 일상생활에 녹아든 요소들이 아름다운 화면 위에 더해지면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셈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움직이지 않는 풍경이 책 속 명언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서라도 먹고 마시고 놀 거리뿐만 아니라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동시에 경험하고자 한다. 이는 다른 국가, 다른 민족의 풍속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14억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각기 다른 민족의 생활예절은 때로 매우 큰 차이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나의 고향 홍콩은 중국 지도 상으로 보면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매우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다. 중국으로 반환되기 이전 영국령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홍콩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중국식과 서양식이 뒤섞인 형태라 할 수 있다. 표면상 유럽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내면에는 중화민족의 의식이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같은 중화권 배경을 지니고 있어도 서로 다르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이해가 불가능한 행동도 있다.


예전에 한 대만 친구가 “홍콩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남편을 대신해 손톱을 깎아준다고 하던데 정말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질문을 받은 나는 너무 당황해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렸다. 질문의 의도를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홍콩 드라마 속에 등장한 ‘현모양처의 모범’ 같은 장면을 보고 그냥 별 뜻 없이 물어본 것이다. 한데 홍콩 현지에서 나고 자란 나도 또 다른 곳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어찌 알았겠나. 말레이시아로 시집 오게 될 줄을!


중국과 한국은 완전히 같은 문화권은 아니지만 명절에 관해서는 특히 비슷한 부분이 많다. 설날·동지·단오 등등.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한국인들은 조상들의 풍속을 보다 세밀하게 보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얼마 전 지나간 음력 7월 15일 중원절(中元節)을 지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심지어 화두에 올리는 사람들도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실은 중국 내륙 지방에서도 이날을 별로 중시하진 않는다.


중원절은 도교에서 유래한 명절이다. 천상의 선관이 1년에 세 번 인간의 선악을 살피러 내려온다 하여 음력 1월 15일(상원·上元)·7월 15일(중원·中元)·10월 15일(하원·下元)에 삼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로 삼원(三元)이라 부른다. 쉽게 설명하면 저승에서 귀신을 모두 방출하는 날로 서양의 핼러윈과 비슷하다.


하지만 동서양이 귀신의 날을 보내는 방식은 확연히 다른 구석이 있다. 서양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신나는 발걸음으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야(Trick or Treat)”라고 외치며 사탕을 받지만, 중국에서는 반대로 아이들에게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신신당부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도 감히 밖에서 뛰어놀 생각은 하지 못하고 마음을 졸이며 옷장 속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는 또 달라서 한밤 중에도 길거리에 사람이 가득해 홍콩의 밤거리는 활기차기가 그지없다. 인간 세계가 너무 붐벼 귀신이 불쾌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아이들이 자라고, 과학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나는 여전히 매번 중원절이 돌아올 때마다 딸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일찍 들어오고, 몸조심하고.


아프고 나서 지난 두 달 동안 이러한 혈육간의 정을 느낄 일이 꽤나 많아졌다. 내가 입원을 하게 되면서 가족들은 교대로 번갈아가면서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병상 옆을 지켰다. 그들이 내게 보내준 지지와 위로 덕분에 나는 이를 악물고 병마와 싸울 수 있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병원 문을 들어서는 것조차 꺼렸지만 가족은 달랐다. 항상 곁에서 서로 의지하며 굳건하게 살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나는 딸의 손을 꽉 잡으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물었다. “오늘이 중원절인데 무섭지 않니? 어렸을 적엔 엄마 옆에 꼭 붙어있었는데, 이제 네가 이렇게 커서 엄마를 돌보고 있구나. 너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딸은 내 어깨에 숄을 둘러주고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엄마, 오늘밤은 진짜 아기 같다. 착한 우리 아기, 어서 자야지.” 그날 밤 나는 거짓말처럼 달게 잘 수 있었다.


마침내 중원절은 지나갔다. 설혹 귀신에 관한 전설이 진짜라 할지라도 이제 지옥의 문은 거의 닫혔을 것이다. 나 역시 경과가 좋아 잘 견뎌내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추석도 나를 들뜨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서 온가족이 둘러 앉아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추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절이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에도 혈육의 정이 다시 한 번 나를 감싸주기를, 당신에게도 그러하기를 고대한다.


천추샤(陳秋霞·진추하)라이언팍슨?파운데이션 주석onesummernight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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