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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발레, 2박자 ‘운명의 여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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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27면

오이겐 요훔이 연주한 ‘카르미나 부라나’ 음반. 작곡가 칼 오르프가 서명으로 인정했다.

외국을 떠돌 때, 아무도 날 아는 이 없는 도시에 밤이 깃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연주회를 간다. 유럽의 도시들을 방문했을 때는 놓치고 싶지 않은 연주회가 한둘이 아니라서 적잖은 고민을 해야 했다.


런던에서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웨스트엔드 왕립극장(Her Majesty’s Theatre)에서의 공연은 놀라웠다. 울부짖는 파이프오르간은 가슴을 울렁이게 했고 거대한 샹들리에가 머리 위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무대로 곤두박질칠 때는 간담이 서늘했다. 막간에 깡통 모자를 쓴 소녀가 좁은 통로를 오가며 아이스크림을 파는 모습도 귀여웠다. 파리에서는 쿠르트 마주어가 연주하는 멘델스존 갈라 콘서트에 갔다. 샹젤리제극장에서 연주를 마친 마주어는 마이크를 잡고 행운권을 추첨하며 파리 시민과 어울렸다. 바이마르에서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봤다. 모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구 반대쪽 칠레에 갔을 때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걸출한 피아니스트 아라우의 나라이긴 하지만 볼만한 연주회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난봉꾼 백작 이름을 딴 칠레 와인 알마비바를 맛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긴 비행에 지쳐 비몽사몽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 시내를 달리는데,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쓴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숙소에 도착해 알아보니 국립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발레단 등이 출연한다고 했다. 예약을 하고 저녁이 오기를 기다렸다.


칼 오르프의 작품 ‘카르미나 부라나’는 세속 칸타타로 분류된다. 합창단과 세 독창자,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오이겐 요훔이 녹음하고 작곡가가 친필 서명으로 인정한 DG 음반이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실연을 보기 힘들었다. 연주자 구성으로 보면 베토벤 9번 교향곡이나 성악이 포함된 말러의 교향곡들과 비슷한데 도무지 무대에 올리지를 않았다.


산티아고의 극장은 소박했다. 그러나 공연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열려 나를 감동케 했다. 그것은 발레가 곁들여진 카르미나 부라나였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기악반주와 무대장면이 딸린, 독창과 합창을 위한 세속적인 노래들’이라는 부제가 딸려 있다. 성악 기악에 무대장치와 춤이 더해져야 진면목이 드러나는 작품인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안무가 에른스트 우트호프(Ernst Uthoff)가 1953년 칠레 산티아고의 쿠르트 요스 발레단(Kurt Jooss Ballet)을 위해 안무를 구성해 준 이후 발레로 공연하는 카르미나 부라나가 세계로 퍼져나갔다. 산티아고가 발레 카르미나 부라나의 원산지였던 것이다.


커튼이 올라가자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는 큰 수레바퀴가 무대 중앙에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팀파니 강타와 함께 터져 나오는 합창 ‘오, 운명의 여신이여!’. 무대 좌우 건물의 처마 아래 웅크린 듯 모인 합창단은 가여운 인간의 운명을 2박자의 가쁜 호흡으로 불렀다. “오, 운명의 여신이여. 달처럼 그대는 변화무쌍하구나. 찼다가 기울고, 혐오스런 삶이여. 괴롭히다 달래주며 나를 희롱하는구나. 가난과 부(富)조차 얼음처럼 녹이는구나.”


카르미나 부라나는 1937년 완성된 작품이지만 가사는 11~13세기에 수집된 것들이다. 중세의 음유시인들이 종교·도덕·유희·사랑을 소재로 쓴 254편의 시가 독일 바이에른의 수도원에 보관돼 있었는데 오르프가 이 중 24편을 골라 곡을 붙였다.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내용이 거룩하지만은 않다. 중세를 흔히 암흑기라고 하지만 수도원 서가에는 그 시절 민중들의 외설적 노래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죽이고 있었다.


“만약에 젊은이가 여자를 데리고 작은 방에 들면, 그들은 기쁘게 합친다네. 사랑의 감정은 부풀어 오르고 체면 따윈 던져 버리지. 둘의 가슴과 팔과 입술에 말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네.” 이 장면에서 산티아고의 남성 무용수들은 상체를 벗은 채 무대에 엎드려 격렬한 팔굽혀펴기를 반복했다.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는 그들의 힘찬 등판은 노골적인 성애보다 자극적이었다.


그날 공연은 산티아고에서도 특별하게 준비되었던 모양이다. 객석 맨 앞의 휠체어를 탄 할머니는 1953년에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였는지도 모른다. 공연을 마친 뒤 극장 로비에서는 언론이 취재경쟁을 벌였다. 한 기자는 외국인인 나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큰 감동을 받았으니 할 말이 가슴에 그득했으나 엄지를 치켜드는 것 외에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칠레는 스페인어를 쓴다.


오이겐 요훔의 음반에는 흥건히 취한 술집 풍경이, 최근에 구한 헤르베르트 케겔의 음반에는 알몸의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는 그림이 실려 있다. 어떤 음반을 듣더라도 큰 수레바퀴 아래서 인간들이 희로애락으로 몸부림치던 산티아고의 그날 저녁이 생각난다. 오, 인간의 운명이여!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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