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흐르는 곳 건물 안돼” 풍수가 반대하자 1층 없애고 ‘공중부양’한 홍콩상하이뱅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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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26면

1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홍콩상하이뱅크.

가자미라는 생선은 한쪽 면에 눈이 두 개 달려있다. 생물학자들은 원래 한쪽 면에 각각 하나씩 눈이 달려있었는데 생존을 위해 바닥에 붙어살면서부터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서 눈 두 개가 모두 한쪽 면에 있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생태계에서 제약은 진화를 촉발한다. 이러한 제약에 의한 디자인의 변형은 건축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회화나 조각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화나 조각은 장소가 옮겨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은 반드시 그 장소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건축은 주변 환경으로 인한 제약이 많다. 그리고 제약을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이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보상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다.

2 이 건물은 1층을 없애고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개방했다. [홍콩상하이뱅크

우선 홍콩의 ‘홍콩상하이뱅크’를 살펴보자. 이 건물은 1985년에 6년간 10억 달러를 들여 완공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단일건축물이었다. 이 건물은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를 했다. 그가 처음 이 건물을 설계할 때 문제가 하나 생겼다. 갑작스럽게 홍콩의 유명한 풍수지리가 그 땅에 건물을 지으면 안 된다고 반대한 것이었다. 이유인 즉 그 건물이 지어지는 위치가 홍콩 경제의 중요한 맥이 지나가는 자리인데 만약에 거기에 건물을 짓게 되면 그 흐름이 막혀서 홍콩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노먼 포스터 같은 대가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풍수지리적인 제약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 풍수지리적으로 맥의 흐름을 막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니 건물의 1층을 모두 열어버리는 디자인을 제안하였다. 방법은 금문교 같은 현수교 방식으로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현수교는 보통 두 개의 기둥이 있고 그 사이에 줄을 드리워서 그 줄에 다리의 상판을 걸어놓는 구조다. 교각이 물에 닿는 면을 최소한으로 한다. 같은 방식으로 빌딩의 각층을 다섯 개 층씩 묶어서 현수교의 줄에다가 매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를 위와 옆으로 반복해서 사용하였다. 이 건물의 1층은 비어있고 수십 층 되는 빌딩은 땅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설계한 것이다. 지금도 이 빌딩의 1층은 온전히 시민들에게 개방돼 있는 공공공간이다. 휴일엔 홍콩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나와서 이 공간에서 마작을 하면서 쉰다. 건축가는 이 공간에 자연채광을 들이기 위해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각도가 변하는 거울을 달아 햇볕을 반사시켜 아래층으로 내려 보내는 하이테크적 기법을 도입했다. 노먼 포스터는 풍수지리가의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에는 사용하지 않는 현수교 구조를 고층건물설계에 도입하여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3 미국 뉴욕의 시티코프 타워.

뉴욕 맨해튼에 있는 ‘시티코프타워’ 역시 제약을 창의적 디자인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이 빌딩이 위치한 지역은 40층 정도의 건물이 들어서있는 오피스 빌딩 밀집 지역이다. 개발업자는 이 곳에 주변 건물 정도 높이의 빌딩을 짓기 위해 땅을 매입했다. 그런데 사거리 코너에 있는 교회가 땅을 팔지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알박기’를 한 것이다. 나쁜 개발업자였다면 조폭을 써서 교회를 협박해 쫓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는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뉴욕에는 ‘공중권 (Air-right)’이라는 법규가 있다. 만약 40층까지 지을 수 있는 땅에 사는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2층짜리 집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38층을 지을 수 있는 용적률을 옆에 땅 주인에게 팔수 있는 법규다. 건축가는 이 교회로부터 38층을 지을 수 있는 용적률 권리(공중권)를 샀다. 그렇게 확보한 공중권을 한 층의 면적이 큰 자신의 빌딩에 적용해 약 10층 정도를 더 높게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코너에 교회가 위치해 그 코너로 기둥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빌딩 건물은 교회 건물의 꼭대기에서 시작해 수십 층이 올라가야 하는데 그 교회자리에 기둥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건축가는 교회를 피해 기둥을 설치하였다. 그러다보니 빌딩의 사각형 평면의 꼭짓점 위치에 기둥이 있는 것

4 시티코프 타워는 기존 교회(왼쪽 건물)를 살리기 위해 1층을 비우고 건물을 공중 위로 띄웠다. [구글 어스]

이 아니라 변의 가운데에 기둥이 위치하는 모양새를 갖게 됐다. 어려운 구조였지만 역삼각형 트러스구조로 빌딩 전체의 하중을 사각형 각 변의 가운데로 내려오게 디자인하였다. 이렇게 하니 코너 부분이 열리는 공간이 만들어져 개방감 있는 광장이 만들어졌다. 교회보다 빌딩이 높아야 하므로 12층 정도 높이까지 건물을 확 띄웠다. 저층부의 광장엔 햇볕이 더 잘 비치게 되었다. 내친 김에 개발업자는 이 광장을 뉴욕시에 기부채납했다. 덕분에 뉴욕시로부터 10층 정도를 더 지을 수 있는 용적률 완화 혜택을 받았다. 결국 개발업자는 공중권으로 10층, 기부 채납으로 10층을 더 받아 주변의 건물보다 20층 정도 높은 랜드 마크 건물을 얻게 된 것이다. 저층 부는 지하철역과 연계돼 주변 사람들이 모여드는 광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건물의 첨두 부분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독특한 모습이다. 이런 모양이 된 이유는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 오일 쇼크가 터져 건축가가 남쪽으로 경사진 지붕을 만들어 태양광 발전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기술로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최초의 친환경 빌딩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건축가의 이런 노력 덕분에 개발업자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언밸런스한 첨두 건물을 갖게 됐다. 지금도 시티코프타워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설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건물이 되었다. 고층건물을 짓다보면 자체 하중보다 바람 때문에 생기는 저항이 더 큰 문제로 떠오른다. 건축가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무거운 추가 자리를 잡는 ‘댐퍼’라는 기계장치를 설치해 기둥의 개수를 확 줄이는 신기술을 적용했다. 이 기술은 ‘타이베이 101’처럼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의 고층건물에 많이 사용된다. 이처럼 건축에는 사회적·지리적·경제적·구조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 같은 제약은 중력을 이겨야하고, 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야 하는 건축물이 가지는 숙명 같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건축가는 이런 제약을 불평만 하는 반면, 창의적인 건축가는 이 제약을 이전에는 없었던 새롭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승화시킨다. 우리나라에도 판에 박힌 건축물이 아닌 이런 창의적 디자인이 넘쳐나는 도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약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제약은 새로움을 낳는 어머니다.


유현준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건축의 흐름』『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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