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는 위기이자 기회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5호 2 면

영국의 선택은 충격적이다. 23일 치른 국민투표에서 영국 국민은 51.9%의 지지율로 브렉시트(Brexit), 즉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다. 글로벌화된 서구 사회에선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고립주의’‘민족주의’ ‘자국 우선주의’의 부활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앞으로 협상을 거쳐 탈퇴가 이뤄지면 영국은 43년간 함께했던 EU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아무도 가보지도, 심지어 생각해보지도 못한 전인미답의 길이기에 문명사적으로도 대사건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불안하고 긴장될 수밖에 없다. 영국과 EU는 물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까지 이런 가시밭길을 함께 가게 됐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사실 영국은 인류 역사에서 특별한 역할을 해왔다. 힘이 아닌 토론으로 공동체 미래를 결정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산실이다. 과학과 창의력, 예술과 상상력, 교육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기반산업을 일으켰다. 열린 경제를 바탕으로 글로벌 교역국가로 우뚝 섰다. 19세기 말 세계화를 통해 오늘날 글로벌화된 지구촌의 바탕도 제공했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시대에는 규제 완화를 통해 지구촌의 자금을 끌어모으는 금융산업을 새롭게 일궜다. 당시 떠오른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은 한때 전 세계를 풍미했다. 영국은 다인종·다문화·다종교·다신념 민주국가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의 인재가 몰려들어 실력을 발휘하는 글로벌 매력국가의 역할도 해왔다. 이런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의 나라에서 나온 국민투표의 결과가 퇴행적인 유럽 이탈과 고립 선택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앞으로 신자유주의 경제나 다문화민주주의 등 영국이 추구해왔던 정책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재검토될 가능성이 크다. 19세기 영국 총리였던 파머스턴 경이 설파했던 “국제정치에선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오직 영원한 국가 이익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처럼 협력과 통합 대신 고립과 자국우선주의가 국제사회의 새로운 경향으로 대두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국제사회는 힘을 합쳐 이러한 도도한 탁류의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


브렉시트가 가져올 발등의 불은 단연 경제다. 무엇보다 영국 경제의 발목이 잡힐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진다. 영국은 2015년 국내총생산(GDP) 2조8490억 달러로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그동안 대외교역과 경제 개방 및 자유화로 성장의 열매를 누려왔다는 평이다. 따라서 브렉시트는 악재다. 이미 시장은 환율과 주가로 반응을 시작했다. 영국이 실체가 모호한 주권을 ‘소탐’하다 경제라는 실리를 ‘대실’하는 자충수를 범했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은 이유다. 연합왕국인 영국에서 ‘잔류’에 압도적인 표를 던진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이탈도 우려된다. 영국은 경기 침체, 국가 분열, EU 파행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경제에 대한 영향이다. 브렉시트는 한국 경제에도 불안 요인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영국과의 직접 교역액이 연 130억 달러 규모로 크지 않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니다. 글로벌 경제는 서로 얽히고설켜 있어 파장이 어떤 식으로든 한국 경제에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교역이 위축되면 유럽 수출에 의존하는 중국에 대한 한국산 중간재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 실물경제는 물론 금융도 문제다. 브렉시트발 불안심리는 투자 위축과 안정투자 선호로 이어질 수 있다. 유로화와 파운드화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와 엔화 선호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자칫 대규모 투자자금 유출 사태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막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당국은 가능한 한 모든 정책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금리 조절 같은 통화정책은 물론 추가경정예산과 같은 재정정책까지 총동원해야 한다. 이에 맞춰 한국 경제 체질의 근본적인 개선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브렉시트에는 명암이 공존한다. 달러나 엔화 가치 상승은 한국에 수출 확대와 신시장 개척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치밀한 전략과 적극적인 대응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발언과 역할을 확대할 기회일 수도 있다. 브렉시트가 한국 경제에 위기의 삼각파도가 될 것이냐, 반전의 기회가 될 것이냐는 지금부터 우리 하기에 달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