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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로 만든 스파이크 0.01초 승부 가른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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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25면

나이키사가 미국 여자 육상선수 앨리슨 펠릭스를 위해 3D 프린터로 특별 제작한 스파이크.

올림픽은 세계 최고 선수들이 겨루는 각축장이자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이다. 100분의 1초를 줄이기 위해 선수들 뿐 아니라 스포츠 과학도 진화한다. 곳곳에 숨어있는 스포츠 과학의 빛나는 발전 상황을 찾아보는 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8월 5일~21일)의 또다른 볼거리다.


스포츠에서 첨단 과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은 단연 유니폼과 신발이다. 선수가 직접 착용하는 유니폼이나 신발에 적용된 첨단기술은 경기마다 일어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경기력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선수들의 몸에 딱맞고, 최적의 경기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유니폼과 신발에는 경기력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업체들의 첨단 과학과 독특한 제작 기법이 담겨있다.


미국의 여자 육상 스타 앨리슨 펠릭스(31)는 지난달 16일 스포츠용품회사 나이키로부터 특별한 스파이크(러닝화)를 받았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스파이크다. 세계선수권 9회, 올림픽 4회를 우승한 여자 단거리 간판 선수인 그는 이 스파이크를 신고 다음달 초 열릴 리우 올림픽 미국 육상대표팀 선발전에 나선다. 미래 제조업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3D 프린터가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의 신발 제작에도 등장한 것이다.


펠릭스가 신고 뛸 새 스파이크는 밑바닥 부분을 3D 프린터로 제작했다. 한 발씩 내딛을 때 생기는 충격을 줄이고, 곡선 주로에도 속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신발 제작을 고민하던 중 3D 프린터 제작 기법을 도입했다. 예전에 몇 주일 걸렸던 개발 기간은 3D 프린터 도입으로 1주일 내로 단축됐다. 그만큼 선수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게 됐다. 펠릭스의 스파이크 제작을 위해 디자인 수정만 70여 차례를 거친 끝에 2년 만에 완성됐다. 펠릭스는 “신발에 모든 과학이 집약돼 있다. 최고의 신발을 갖게 돼서 올림픽에 대한 자신감도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토니 비넬 나이키 이노베이션 부문 부사장은 “선수의 기량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 선수의 훈련 기록도 점점 빨라졌다”고 자신했다.

남자 10종 경기 애쉬턴 이턴 선수의 얼굴에 딱 맞게 3D 프린터로 만든 쿨링 마스크.

이제 3D 프린터는 스포츠 용품 제작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8월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남자 10종 경기에 출전한 애쉬턴 이턴(30·미국)은 경기 중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투구 모양의 마스크를 쓴 모습이 관심을 모았다. 이 마스크는 선수의 얼굴에 맞게 3D 프린터로 만든 ‘쿨링 마스크(cooling mask)’였다. 얼굴을 수건으로 닦거나 물을 붓는 대신 마스크를 써서 땀을 식히는 용도로 제작됐다. 마스크는 선수의 두상을 3D 프린터로 스캔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국 사이클 팀도 3D 프린터로 각 선수들의 두상에 맞는 맞춤형 헬멧을 제작해 경기에 착용하고 있다.


3D 프린터처럼 새로운 제작 기법을 도입해 만든 유니폼이 있다. 사이클에서 착용하는 유니폼은 공기 저항을 덜 받기 위한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풍동(風洞) 실험을 거친다. 바람의 방향·세기에 따라 측정되는 저항값을 조사해 선수의 몸에 착 달라붙으면서도 외부 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 유니폼을 만드는데 활용한다. 나이키에서 제작한 올림픽 축구대표팀 유니폼에는 친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해 유니폼 한벌당 재활용 플라스틱병 16개를 사용했다. 수영용품 제조 업체인 스피도 영국 본사는 제작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스포츠 심리학자, 항공기 디자이너 등이 수영복 제작에 참여한다.


유니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종목은 수영이다. 물에서 경기를 펼치는 수영은 착용하는 수영복이 얼마만큼 편하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2000년대엔 폴리우레탄 등을 이용해 물의 저항을 줄인 전신 수영복이 세계신기록을 연달아 양산했다. 하지만 이 수영복은 ‘기술 도핑’ 논란 속에 2010년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퇴출됐다. 일정 이상의 부력을 지닐 수 없게 하고, 표면도 평평해야 하는 등 수영복 규정은 까다로워졌지만 진화는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엔 자동차·항공기 등의 제작에 사용되는 탄소 섬유가 포함된 수영복도 개발됐다.


올림픽 통산 금메달 18개를 딴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31·미국)는 2014년 현역 은퇴를 번복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MP’라는 브랜드의 수영복을 만들어 경기에 착용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지도하는 밥 보우먼 코치와 용품업체인 아쿠아 스피어의 도움을 받아 압축성이 좋고 유연한 재질의 하이브리드 수영복을 만들었다. 펠프스는 이 수영복을 입고 지난해 미국선수권에서 100·200m 접영, 200m 개인 혼영 등에서 3관왕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토드 미첼 아쿠아 스피어 매니저는 “펠프스는 더 자연스럽게 수영하는 걸 원했다. 처음엔 펭귄처럼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던 그는 자신의 수영복에 크게 만족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상 단거리 종목에서 스프린터들이 신고 뛰는 스파이크는 경량화 경쟁이 진행중이다. 육상 400m 세계 기록(43초18) 보유자인 마이클 존슨(49·미국)이 현역 시절 99g에 불과한 초경량 신발을 신은 뒤 ‘가벼운 신발은 곧 기록’이라는 통념이 생겼다. 육상 스타 ‘번개’ 우사인 볼트(30·자메이카)는 순간적으로 빠른 스피드를 내기 위해 탄성이 좋은 탄소섬유 재질의 징이 박힌 스파이크를 신는다. 푸마에서 제작한 볼트의 스파이크 한 짝 무게는 181g밖에 안된다. 볼트는 “신발을 신지 않는 것처럼 가볍고 편하다”고 만족해 했다. 최근 개발되는 육상 단거리 종목?선수들의 스파이크 무게는 150~200g 안팎. 일반 운동화(300g 안팎)보다 훨씬 가볍다.

아디다스사가 지난달 처음 선보인 끈이 없는 축구화.

첨단 기술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고 진화하는 종목인 축구에선 기존 틀을 깬 축구화가 등장했다. 리우 올림픽 축구에서 와일드 카드(23세 초과) 멤버로 출전할 손흥민(24·토트넘)은 끈 없는 축구화를 신고 뛴다. 아디다스가 지난달 만든 끈 없는 축구화는 볼 컨트롤과 슈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끈을 없애 달릴 때 거리낌 없이 마음껏 뛰고 슈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축구화 무게도 189g에 불과하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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