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꺼진 불 아니다, 한국 경제 후폭풍 대비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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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2 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나흘 뒤로 다가왔다. 브렉시트 반대 캠페인을 벌여왔던 조 콕스 영국 하원의원이 불의의 총격으로 숨진 후 잔류 지지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찬반은 여전히 팽팽해 결과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당사국인 영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국민투표 결과를 예의주시하는 것은 브렉시트 여파가 가져올 충격파 때문이다.


탈퇴 찬성 진영은 브렉시트가 성사될 경우 EU로 넘어간 각종 경제적·사회적 주권을 되찾아와 금융·예산·이민·복지 등 제반 분야에서 영국 정부가 자유롭게 정책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찬성 진영인 ‘탈퇴에 투표를(Vote Leave)’의 매슈 엘리엇 대표는 “영국이 신흥시장과 무역협정을 맺으면 일자리 30만 개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이 치러야 할 대가도 크다. EU와 경제적 국경을 다시 쌓아야 하기 때문에 무관세 혜택이 없어져 무역이 위축된다. 자본 이동 제한으로 금융시장 위축도 불가피하다. 영국상공회의소(CBI)도 2020년까지 95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1000억 파운드(약 165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심각한 사안이지만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영국에만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에겐 이웃집 불구경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지난해 대영 수출은 73억9000만 달러였다. 2020년까지 대영 수출이 연간 4억~7억 달러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한국의 영국 수출 비중은 1.4% 수준으로 크지 않다. 문제는 세계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경색되고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영국계 자금이 무더기로 유출될 우려도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영국이 보유한 우리나라 상장 주식은 36조5000억원어치다. 외국인 전체 보유 주식의 8.4%에 달한다. 증권가에선 코스피가 1800선까지 밀릴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처럼 브렉시트가 우리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현실화될 경우 외환·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정부는 우리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여러 가지 후폭풍을 철저히 분석,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경제는 여러 가지 대내외적 변수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연초 우리 금융시장은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미국의 금리 인상 등의 악재로 홍역을 치렀다. 조선·해운 산업의 위기로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다시 금융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 EU에 대한 반감도는 그리스(71%)·프랑스(61%)·스페인(49%)이 영국(48%)보다 높았다. 장기적인 과제지만 EU 회원국의 도미노 이탈에 대비한 전략도 지금부터 미리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브렉시트의 실현 여부에 관계없이 글로벌 시장에서 대두되는 보호무역주의 기류는 우리에게 치명적이다. 토머스 마이어는 콕스 의원에게 총격을 가하며 “영국 우선(British first)”이라고 소리쳤다. 이 구호는 반 무슬림 극우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대서양 건너에서는 “위대한 미국(Great America)”을 부르짖는 도널드 트럼프가 멕시코인의 밀입국을 막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공화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차지했다. 세계화와 기술 발전에 따라 국가별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이 커진 결과다. 브렉시트가 부결되고 트럼프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된다고 해도 마냥 안도할 처지는 아니라는 얘기다.


강대국들의 보호주의·신 고립주의의 대두는 대외 무역과 개방으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엔 치명적 장애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해 체질을 강화하고 국제 정치·경제 상황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우선 구조조정과 경제개혁 등 당면 현안부터 속도를 내야 한다. 더 나아가 세대·이념·지역 대결 등 우리 내부의 갈등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과 토론을 벌이는 한편 국론을 모으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 외부에서 불어닥칠 보호무역주의의 거센 풍랑을 헤쳐나가려면 우리 내부의 상처부터 보듬고 결속을 다지는 게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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