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가치와 세계 경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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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18면

국내외 경기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 것은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모멘텀 없이 단지 시간이 지난다 해서 경기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전 세계적 인구 고령화에 따른 소비 및 투자 부진, 중국 등 신흥국의 성장력 약화 등이 주된 요인으로 지목된다.


경기의 커다란 흐름은 구조적인 요인이 지배한다 해도 일시적이고 주기적인 요인도 작용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올 2월 이후 글로벌 경제에 미약하나마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달러화 가치가 1월을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주가 역시 급락세를 멈추고 2월 중순부터는 오르는 모습을 나타냈다. 원유공급 축소 혹은 동결에 따라 유가 안정 기대가 형성된데다, 달러화 강세에 대한 기대가 완화됐기 때문이었다.


금융시장 불안이 진정되면서 신흥국 자본유출이 이어지지 않았다. 2월 들어 신흥국 주식과 채권에 대한 외국인 순매입이 시작됐고 원자재가격 안정은 전 세계적인 수출과 제조업 생산 안정 신호로 해석됐다. 실제로 3월 들어 각국의 산업생산이 완만한 개선세를 보이기도 했고 이후 각국에서 부분적이나마 수출감소세가 완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달러화 약세는 3월 중순 미 연준(Fed)이 올해 내 금리인상을 당초 제시했던 1%포인트가 아니라 대략 0.5%포인트 전후로 완화할 것임을 예고하면서 힘을 받았다. 금리인상 완화를 시사한 것은 디플레이션과 글로벌 경제에 대한 우려를 감안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완만한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에도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특히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에는 상당히 호의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일러스트 강일구

현재의 세계경기 부진이 짧게 보면 201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도 관련 있다. 2014년 중반 사우디 아라비아가 원유 증산에 나서면서 유가가 큰 폭 하락했고, 미국이 0%로 유지해오던 기준금리를 2015년부터 올리겠다고 선언한데다 일본과 유로존이 금융완화를 확대함에 따라 달러 강세가 심화됐다. 강달러와 유가 급락은 미국의 수출과 투자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경제에 치명타가 된다. 달러화 표시 부채를 많이 가지고 있는 신흥국 기업의 부담도 늘어나게 된다.


위안화가 달러화에 사실상 고정되다시피 해서 달러 강세는 중국의 수출을 제약한다. 또한 강달러가 유가를 누르는 측면도 있다. 국제유가가 달러화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화 강세 시 유가가 하락하는 경향이 나타나며, 다른 한편 달러화 강세는 달러화 표시 자산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원유에 대한 투기적인 수요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달러화 가치의 상승은 특히 신흥국 경제에 부담을 줘 세계 경기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았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거나 저금리로 달러화가 전 세계로 풀릴 경우 달러가 약세를 띠면서 세계 경제는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였다. 그러나 반대로 달러화가 강세를 띠게 되면 경상 및 재정수지 등의 측면에서 취약한 국가로부터 자본이 유출돼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신흥국들이 위기를 겪기도 했다. 80년대 초중반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외환위기나 90년대 후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와 러시아 외환위기, 2000년 전후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금융위기 등이 그 예가 된다.


현 상황에서 설혹 달러화 약세가 이어진다 해도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에 들어설 것으로 기대한다면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이다. 경기 부진이 경기 침체로 빠질 확률을 낮추면서 올해 1분기가 세계 경제의 단기 저점이 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기대일 것이다. 그나마 그러한 전망이 희망으로 그칠 가능성도 있다.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미국의 금리인상 확률이 다시 높아지고 달러 강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음달 중순 열리는 FOMC에서 금리 인상을 결정할 확률이 30~40%라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고용 등 미국 경제의 회복세와 물가 목표치 달성 등의 조건이 만족되면 6월이든 7월이든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이다.


금리인상에 따라 달러화가 다시 강세를 띨 것인지는 더욱 중요한 문제다. 실제로 이달 들어 세 번째 주까지 달러가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주에는 주춤하며 약세를 나타냈다. 장기금리 역시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진 이달 중순 이후에도 2013년 5월이나 지난해 초와 같이 금리 인상 관련 충격 발발 시기와는 달리 가파르게 오르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이유다. 완만한 경기 개선에 대한 거의 유일한 실낱 같은 희망이다.


신민영?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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