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반항기 너머로 언뜻 비치는 순수한 미소, 김우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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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우빈입니다”라며 악수를 청하는 청년. 그의 몸에는 자연스러운 예의가 배어 있었다.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어찌나 반듯한지, 그 순간 김우빈(27)이 ‘키 크고 말끔하게 생긴 톱스타’라는 걸 잠시 잊을 뻔했다. 기자의 녹음기를 선뜻 자기 앞에 가까이 놓으며 “이게 낫겠죠?” 하는 그에게서, 영화 ‘스물’에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내뱉던 철없는 청춘 차치호, TV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2016, KBS2, 이하 ‘함틋’)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던 까칠한 톱스타 신준영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 천천히 고르며 신중하게 답하는 그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반항아 같은 겉모습을 들추면, 그 안에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조숙한 사람이 들어 있지 않을까.

김우빈에게 ‘마스터’의 박장군은 “단 하루 만에 고민을 끝내고 출연을 결정할 만큼 욕심나는 인물”이었다. “시나리오 속에 ‘장군’이라는 캐릭터가 살아 있었거든요. 정말 특이한 놈인데, 천진난만하고 귀여웠어요. 등장인물 중 가장 투명하게 감정을 드러내니까요.” 비상한 해킹 실력을 가진 장군은 크게 한탕 벌겠다며 원네트워크에 들어왔으나 매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천재 해커’라 불리지만 친구 안경남(조현철)과 있을 때는 한없이 귀엽고 따뜻한 청년이다.

“부담이 정말 컸어요. 훌륭한 선배들과 연기하는 것도, 이야기 구조상 대부분의 장면에 등장하는 것도요. 극 중에서 장군은 거의 모든 인물을 만나거든요. ‘폐 끼치지 말자, 잘해야 돼’라는 생각뿐이었죠.” 그가 장군을 연기하며 염두에 둔 것은 “현실에 발붙인 입체적 인물로 그리는 것”이었다. 그는 “주변의 명석한 친구들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친구들을 보니 각자의 분야에서 작업할 때 말고는 ‘허당’ 같더라고요. 일에 집중할 때도 눈빛은 진지하지만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할 것 같았죠. 그래서 장군의 의상도 아주 평범해요.” 만약 ‘마스터’ 속편이 나온다면 주인공은 당연히 장군이 아닐까 점쳐질 만큼, 그의 선택은 극 전체를 좌지우지한다. “제가 돋보이려 하면 이 영화에 독이 될 것 같았어요. 극 안에서 생생하게 존재하는 동시에, 제가 느낀 캐릭터의 매력도 최대한 살려야 했죠.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았어요, 정말.” 연기력 면에서 두말할 필요 없는 선배 이병헌과 함께한 시간도 김우빈에게는 고스란히 배움의 시간이 됐다.

“연기에 관해서는 섬세하고 치밀한 분이죠. 한 컷 찍고 나서 곧장 모니터로 달려가 자기 연기를 꼼꼼히 확인하세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병헌 선배님이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새삼 깨닫게 됐어요. 사적으로는 유머러스한 에너지가 넘치세요. 촬영 현장에서 분위기 띄우는 일은, 막내인 제가 해야 하는데(웃음).”

그의 주변 사람들은 “김우빈처럼 진지한 배우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어쩌면 300만 명 넘는 관객이 ‘스물’을 보며 큰소리로 웃은 건, 그의 발랄함을 스크린에서 처음 발견했기 때문은 아닐까. “대체로 조용한 편인데, 작품마다 분위기를 타는 것 같아요. ‘스물’처럼 함께 출연하는 또래 배우가 많거나, 제가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잘 어울려요.

그때는 배우들과 춤추며 놀았죠. ‘우리는 하나야, 하나가 되어야 해!’ 이러면서. ‘마스터’ 촬영할 때는 선배님들만 조용히 따라갔습니다(웃음).” 상대와 상황에 따라 예의를 갖추고 선을 지키는 김우빈. 그 모습에 “나이보다 어른스러워 보인다”고 하자, “키가 커서 그래요”라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형들과 친하게 지내 왔거든요. 열 살 넘게 차이가 나도요. 아무래도 그런 영향이 있지 않나 싶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보다 어린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대중은 그의 도회적 얼굴에 언뜻 비치는 부서질 듯한 쓸쓸함을 사랑해 왔다. 김우빈을 스타로 도약시킨 TV 드라마 ‘상속자들’(2013, SBS)의 최영도처럼. “‘학교 2013’(2012~2013, KBS2) 오디션 당시, 제가 가진 이미지에 대해 이민홍 감독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동의할 수 없었어요.

부모님께서 밝고 활발하시거든요(웃음).” 여리고 고독한 이미지는 아마 그가 지닌 감정의 결이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3년 김우빈은 어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모델 일을 시작했던 스물한 살 무렵, 생활비가 부족해 모델 친구와 함께 사우나에 살았다”며 “날마다 우리에게 밥 사 줄 사람을 찾아 연락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어요. 이 일을 정말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많이 물었어요. 고된 나날이었지만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제가 가진 많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됐고요.”

김우빈은 스스로에게 힘을 북돋우는 방법으로 “‘감사 일기’를 쓴다”고 했다. 그날그날의 고마운 일을 떠올려 적는 시간이란다. “딱히 쓸 만한 일이 없을 때는 ‘오늘도 삼시세끼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적기도 해요. 그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거든요. 그동안 여러 기자님들께 권유했는데, 다시 만났을 때 물어보면 다들 ‘안 쓰셨다’고 하더라고요. 한번 적어 보세요. 정말 좋아요.” 매일 ‘감사 일기’를 쓸 만큼 우리 일상에 고마운 일이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병나지 않고 무탈한 것도 감사하죠. 건강한 것만큼 고마운 일도 없잖아요.

‘함틋’을 찍으며,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알게 됐거든요. 건강을 잃으면 삶의 의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지금 김우빈에게는 이렇듯 삶과 연기가 딱 붙어 있다. 연기를 통해 하루하루 성장하는 시기. 그는 “보통의 20대처럼 세상을 갓 만나 시행착오 겪으며 뛰어가는 중”이라 했다. 다만 자신은 “스트레스를 동력 삼아 연기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고. ‘그림 그리기’는 김우빈이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방식 중 하나다.

스케치북에 매직으로 낙서하듯 그리다 100호(162.2×130.3㎝)짜리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지 2년쯤 됐다.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 그에 대한 생각을 그림으로 옮겨요. 대부분 ‘뭘 그린 거야’ 싶은 그림들이죠. 그리다 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 마음도 편해지고요. 지난번에는 ‘함틋’에 관한 그림을 완성해 이경희 작가님께 선물했어요. 제목은 ‘함부로 애틋하게’.” 항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그에겐 앞으로 꺼내 보일 더 많은 모습이 있지 않을까. 김우빈의 말처럼 그는 “아직 20대니까, 늘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연기와 세상을 대할” 테니까.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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