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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기경, 표결중 밖에서 대기|명동시위 6일…대치에서 해산결정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명동농성자들은 농성해산성명에 앞서 회의장인 문화관 2층에서 나와 30분동안 성당정문∼중앙극장앞길∼로열호텔앞까지 이르는 3백여m의 도로를 『선구자』등의 노래를 합창하며 마지막(?)시위.
시위대는「독재타도」라고 쓴머리띠에 이날상오 주변상인들이 전해준 카네이션을 각각 한송이씩 꽂은 채 시위를 하다가 주변건물창가·옥상에 있던 시민들이 꽃을 뿌리고 박수를 치는등 호응하자 『와』하는 함성으로 답례.
◇농성해산=지난 12일부터 치안당국과 학생들사이에 서서 사태의 원만한 수습방안을 강구해 온 성당측의 대변자 역할을 해온 천주교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함세웅신부는 그동안 학생대표와의 협의와 당국과의 접촉으로 매우 피곤한 듯 학생들의 농성해제가 결정된 뒤 교구청안 사무실로 돌아가 외부인과의 면담을 사절.
함신부는 지난 10일 학생들이 농성을 시작한 뒤 이틀동안 화염병투척등 격렬한 시위를 벌이자 이를 자제해 주도록 학생들을 적극 설득하고 당국과의 협상을 벌여오면서 당국의 공권력 행사를 우려하는 학생들에게 『이번 농성은 국제적인 사건이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며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기도 했다는 것.
○…김수환추기경은 학생들의 투표가 진행되는 상오9시10분쯤 교구청 집무실에서 함세웅신부와 함께 표결장소인 문화관까지 갔으나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데다 침통한 분위기 때문에 곧 투표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투표가 끝날 때까지 20여분동안 복도에서 대기.
학생들을 격려하고 나온 김추기경은 집무실로 돌아가면서 『학생들이 농성을 풀기로 했느냐』 『무슨 말을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설득하러 간 것이 아니라 격려하러 갔었다』 『농성해제는 학생들이 결정할 것이다』고 다소 굳은 표정으로 답변.
○…학생과 시민들이 3차투표까지 가면서 농성해제를 결정하게 되자 『끝까지 농성을 벌이자』며 강경 입장을 고수했던 일부 학생들은 강한 불만을 토로 했다는 것.
또 다른학생들은 연단에 나서 『훗날의 역사가 오늘의 결정을 치욕으로 기록할 것』이라며 울음을 터뜨려 장내가 온통 울음바다를 이루었으며 한 학생은 자해할 움직임까지 보여 다른 학생과 시민들이 급히 제지하기도 했다고.
○…학생들의 농성 고수분위기가 바뀐 것은 14일밤과 15일상오에 있은 함세웅신부등 가톨릭측의 셜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14일 밤새도록 10명씩 15개팀으로 나누어 농성해산과 고수를 놓고 토론을 벌인 결과 13개팀이 농성고수를 결의해 현장분위기는 강경쪽으로 치닫는 듯 했으나 15일상오8시쯤 함신부가 들어가 자신의 신앙고백을 겸한 70년대부터의 수난사를 이야기하며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등의 말로 학생들을 설득, 학생들이 농성해산쪽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다.
○…14일 해산투표에서 농성학생들은 기권은 인정치 않고 과반수원칙을 적용, 진행. 개표후 농성해제가 발표되자 상당수 농성자들은 『민주화가 되지 않은 상대에서 농성을 풀게 돼 한스럽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학생들과 사제단측의 중재를 맡아온 양권식신부는『농성자들에게 농성해제를 사제단에서 강요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사제 몇명이 개인적인 의견으로 농성해제를 권유한 일은 있다』고 밝혔다.
양신부는 또 사제단측의 올바른 민주운동방법등을 경험케 해주려는 성실한 노력을 학생들이 인식한 탓인지 성당의 각종 프로그램과 제의에 전폭적인 협조를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귀가가 결정된 직후 몇몇 사제들에게 『저희들의 주장을 이해해주고 여러차례 정부당국에 저희의 뜻을 전해준데 대해 감사한다』고 인사를 하기도.
○…지난 11일부터 사제관등에서 학생들의 농성을 지지하며 농성에 동참했던 서울 대교구신부 40여명은 학생들의 농성해제 결정에도 불구, 풀지 않고 농성을 계속.
신부들은 14일하오11시부터 3시간여동안 사제관에서 회의를 열며 15일하오8시 「나라를 위한 특별미사」를 준비하는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농성을 해제하도록 학생들을 설득하면서 『15일밤 미사가 민주화를 위한 사제들의 대행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경찰병력 철수=명동성당농성사태로 교통이 완전 차단됐던 명동일대에는 14일 새벽학생들이 성당앞 바리케이드를 철거한데 이어 경찰이 이날 하오10시쯤 명동에서 전원철수, 14일밤부터 교통이 재개.
경찰이 완전 철수한 직후인 이날 하오11시까지 학생·시민들은 성당입구에서 토론회를 가졌으며 교통이 재개되자 택시 10여대가 성당앞까지 접근, 차를 아예 세워 놓고 이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경찰이 철수한 직후인 14일하오10시30분쯤 성당입구 가두판매대에는 주인이 나와 물건을 점검하는 모습도 보였고 명동일대 상인들도 15일 아침 일찍부터 가게에 나와 진열대를 점검·청소하면서 정상영업을 준비.
명동일대에 근무하는 회사원들은 경찰이 완전철수해 성당접근이 가능하자 성당안과 성당입구에 나붙어 있는 각종게시물을 읽어보는등 관심을 표명.
◇명동성당 농성=농성학생들은 14일 상오4시부터 40분에 걸쳐 자신들이 성당입구에 설치해둔 바리케이트를 모두 철거.
이는 함세웅신부등 성당측이 『일요미사에 올 신자들이 바리케이드를 보면 「비폭력」을 주장하는 학생들을 폭력집단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철거를 요청해옴에 따른 것.
학생들은 성당측의 요청을 받은 뒤 이날새벽 『끝까지 투쟁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바리케이드가 필요하다』는 측과 『비폭력의 입장을 알려야 한다』는 측이 토론을 벌인끝에 결국 치우기로 합의.
○…일요일인 14일에도 성당구내에 마련된 농성학생들을 위한 성금함에는 성금을 내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로써 성금함에 접수된 성금과 식량·옷가지·음료수등의 물품등은 집계조차 못할정도.
성금을 낸 사람들은 대부분 신도로 정오미사를 전후해 『우리는 주의 사랑을』이라는 성가를 부르며 줄을 서서 헌금.
농성학생들은 성금을 가급적 아껴쓰고 나머지 돈들은 명동성당구내에서 천막생활을 하는 상계동 철거민들에게 건네주는 것을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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