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지않는 장기집권-영국식 민주주의 장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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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국사상 최초의 여당수라는 기록을 10년전에 낸 「대처」 여사는 이번에 새로운 기록 두개를 추가했다. 금세기 들어 최장의 장기집권과 최초의 3선 수상이다.
3백년 가까운 영국의 내각제 역사에서 「대처」는 3선에 15년간 집권한 19세기의 「리버풀」 수상 (1812∼1827년) 이래 최장수 수상이 됐다.
그러나 그의 장기집권을 미워하거나 우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말할것도 없이 국민의 자유스러운 동의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통성 위에서 이룩됐기 때문이다.
어떤 정권의 정통성은 국민이 받아 들이는 합법적 절차만 밟아 집권하면 이뤄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처」 는 이 같은 합법적인 정부성외에 정치적 실적과 국민적 인기까지 갖췄다.
그는 불합리한 세제를 고치고 교육개혁도 단행했다. 인플레율을 낮추고 정부의 재정을 튼튼히 했을뿐 아니라 경제도 안정시켰다.
더구나 그는 2차대전 이후 급속히 기울어 가는 영국세의 부홍을 갈망하는 국민들 앞에 위대한 「대영제국의 재현」 이라는 꿈을 제시했다. 황혼의 그늘 밑에 무기력 하기만 했던 영국인들은 「대처」 수상의 영도하에 다시 단결하여 국가재건에 나설 수 있었다.
「대처」 여사의 명백한 국정지표는 그의 리더십과 함께 열렬한 인기를 창출하여 선거때마다 보수당에 승리를 안겨 주었다.
그 때문에 영국 보수당의 연승과 장기집권은 당의 힘이라기 보다는 「대처」 여사 개인의 승리라고도 한다. 어떤 인물이 조직의 힘을 빌어 집권한것이 아니고 개인의 인기와 리더십이 조직을 살려낸 사례다.
지난 8년 간 집권하면서 「대처」여사의 통치 스타일은 「강철여인」 이라는 그의 별명처럼 단호하고 철저한 데가 있었다. 특히 영국병의 근원이라는 광업노조 파업의 분쇄과정이나 에이레 분리 주의자의 단식을 방관, 사망에 이르게 한데서 보여준 그의 행동은 잔인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강력한 조치를 취하면서도 국민적 지지를 모으고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사에 토대하여 법률을 준수하고 그러면서도 건전한 정책을 통해 괄목할만한 국가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불문 헌법의 나라다. 헌법이 우리처럼 하나의 법전으로 돼 있는 것이 아니고 몇 개의 문서로 구성돼 있다. 13세기의 대헌장이나 17세기의 권리장전등이 그것이다.
옛날에 작성된 이런 문서들은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그 뜻은 이현령 비현령 식으로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풀이될 수 있게돼 있다.
그런데도 영국의 집권자들은 그런 편의적 해석을 피하고 국민적 동의를 존중하여 오늘의 민주제도를 구축해 놓을 수 있었다.
「대처」 여사가 이번 총선에서 다시 2개의 영광스런 기록을 추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민주제도 위에서 국민적 동의를 기초로 합법적인 시정과 효율적인 정부운영을 통해 영국적 민족주의의 부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정치적 진통을 겪고있는 우리에게는 「대처」 의 신화는 중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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