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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공업국 목조르는 선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신흥 공업국들(NICS)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짐에 따라 그 책임과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국들의 모임에서 강자의 논리대로 개도국들의 책임과 역할이 일방적으로 규정될수는 없다.
현안 과제인 지속적 경제성장, 무역분쟁의 완화, 국제통화 안정, 외채위기 극복등을 외해 선진국, 개도국들이 공동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역시 선진국들의 개도국에 대해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서 개도국들에는 무리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10일 폐막된 서방 선진7개국 베네치아 정상회담 결과만을 보아도 이를 알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는 무엇인가. 정상회담의 성격이 워낙 그런것이라 해도, 「레임덕」 (임기 종료를 앞둔 지도자)들의 회동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세계경제 현안 해결을 위해 아무런 대안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현안의 재확인 정도로 이번 회담이 끝나고 말았다.
이번 회담에서 정상들은 시선을 엉뚱한데로 돌려 문제를 호도하려는 인상마저 보여 주었다.
정상회담 폐막과 더불어 채택한 경제선언을 통해 선진국들은 개도국들의 시장개방 확대와 환율정책의 적극 활용을 촉구하고 나섰다.
구체적으로 국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한국·대만등 성장 속도가 빠르고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신흥 공업국들로 하여금 보다 시장개방을 넓히고 자국 통화에 대한 평가절상을 단행하도록 요구했다.
현안 세계 경제의 핵심 난제 해결을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할 일을 다할수 있도록 협조체제가 절실하다. 이같은 접근은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개도국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초점을 흐려 놓고 있다.
세계 경제질서 불균형에 대해 가장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할 일본, 자구 노력에 보다 큰힘을 기울여야할 미국, 큰 폭의 무역 흑자국으로 책무에 소홀한 서독등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일본이 4백20억달러에 달한 경제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성과가 의심스러우며 미국은 재정적자 축소등 근원적인 경제개선에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서독은 내수진작에 거의 손을 안쓰고 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 결과로 나타났듯이 한국이 앞으로는 환율과 개방압력을 더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방한한 IMF(국제통화기금)의 연례 협의단도 한국경제에 관한 잠정평가 보고를 통해 환율 절상과 추가 시장개방 문제를 적극 제시했다.
그동안 우리는 환율, 시장 개방등 어느 문제나 의욕적이었고 무역흑자국으로서의 국제경제 불균형 해소에 다각적인 정책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런데도 외압이 완화되기는 커녕 가중 일로에 있으며 한국은 협공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다액 외채국으로 겨우 흑자로 반전한 국제수지덕에 외채를 갚아 나갈수 있게되어 경제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한 즈음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자연히 선택의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는 의연히 대처할 것인가, 굴종할 것인가, 어느 쪽에 더 치중해야 할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된다.
원화 절상, 시장 확대개방 어느 문제에서나 분수를 넘어서 속도를 내고 있는 우리의 실정에서 볼때 선진국들의 무리한 요구는 접어두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국제수지 흑자기조 정착 여부에 대한 분명한 확답이 어렵고 취약한우리의 경제기반을 감안할때 그렇다. 대외 경제정책의 총 점검을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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