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화려…발랄…뮤지컬의 새장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우리나라의 뮤지컬 역사는 일천하다. 예그린이 공연했던 『살짜기 옵서예』를 위시해서 근래에 본 『아가씨와 건달들』까지 합쳐 내가 본 뮤지컬은 몇편도 안된다. 그러다가 여행중에 『에비타』 『캐츠』를 대하고 본고장의 뮤지컬이 주는 박력이랄지, 환상장치가 어떤 것인가를 경험하기도 했다.
뮤지컬의 줄거리를 나무의 덩치로 비유한다면 덩치 못지 않게 증요한 건 춤과 노래와 대사로 엮는, 그 나무를 돋보이게 하는 잎사귀역일 것이다. 장치·조명·연주 또한 그 나무를살리느냐, 죽이느냐의 관건이 된다. 뮤지컬은 그래서 어렵고, 사대주의는 아니지만 본고장 냄새 운운의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윤석화가 시도한 『송 앤드댄스』(5∼14일·호암아트홀)는 종래 뮤지컬의 영역을 어느 의미에서 과감히 벗어나 있다. 다시 말해 춤과 노래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사를 없애고 1부는 노래, 2부는 춤만으로 거대한 도시의 미아격인 「엠마」의 삶을 조명한다.
윤석화는 무려 열다섯 곡을 부르는데 「비트」(박자)가 약한 편이다. 처지는 고음 처리를 연기로 커버한다. 윤석화가 수녀로 나온 『신의 아그네스』에서 그의 철분이 섞인 목소리는 일품이었다.
그러나『송 앤드 댄스』1부 전막을 독주하는 「엠마」의 사랑·갈등·새로운 삶과 좌절은 앞서 있는 그의 연기력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렇지만 말이다. 윤석화는 스타였다. 아니, 명물이랄지. 「작지만 새로운 것을」만들려는 의욕이.
2부 춤은 아홉개 장면이 전환된다. 진영희 남경읍 김선화를 비롯해 대부분 서울예전 출신들이다. 그 절반 이상이 『가스겔』『애니』등에서 구연을 경험한 자라나는 싹들이다. 우선 이 11명의 싱싱한 나무들은 「아직은」이란 단서 이전에 젊고, 젊은 무기답게 발랄하며 앳되고 겁이 없다.
4장 「유혹」, 8장「우정과 의지」는 점액질처럼 끈끈하면서도 밝다. 춤을 분담한 두 안무가의 「가위」가 날이 서지는 않았는데도 이들은 새롭게 꾸민 뮤지컬 별장의 자기 몫을 단단히 해냈다.
호암아트홀서 14일까지 연장공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