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참모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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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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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는 유별난 체험이다. 그의 처지는 박근혜 정권 파탄의 한복판이다. 그는 역대 가장 센 민정수석이었다. 그는 권력의 쾌감을 만끽했다. 하지만 우병우는 대통령 보좌에 실패했다. 민심은 그에게 야유와 환멸을 쏟는다. 급전의 롤러코스터 장면이다.

우병우는 독특한 체험
유별난 신분상승 의지로
사정 업무에 주력하고
대통령 어젠다 관리엔 무능
“검사 출신은 정치 상상력이
필요한 민정수석에 부적합”

민정수석은 권력 운용의 키 플레이어다. 김용갑 새누리당 고문은 “청와대 참모 중 특히 민정수석비서관을 잘 써야 정권이 성공한다”고 했다. 그 단언은 경험에서 나온다. 그는 5공 후반기 민정수석이다. 김용갑은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을 밀었던 원로다.

민정수석은 리더십을 보좌한다. 공직 감찰과 인사 검증, 사정(司正)·정보 업무의 정돈은 수단이다. 막강한 자리다. 참모의 파워는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느냐에 달렸다. 우병우의 지위는 견고했다. 그는 최순실과 문고리들의 이너서클에 진입했다. 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했다. 민정(民情)의 사전적 의미는 민심의 형편이다. 민심 흐름의 파악과 소통은 정권의 평판을 판가름한다. 김용갑의 경험에선 우병우는 형편없는 낙제점이다.

민정수석은 국정 어젠다를 관리한다. 김성재 전 문화장관은 “대통령의 국정 의제가 실천되는지를 확인·독려하는 작업이 민정수석의 주요 업무”라고 했다. 김성재는 김대중 정권 때 민정수석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의 어젠다는 규제 혁파다. 박 대통령은 “손톱 밑 가시 뽑기, 규제가 암 덩어리”라고 외쳤다.

규제는 관료 권한이다. 그 때문에 공무원들은 규제 타파에 저항한다. 김성재는 “정책 성과를 올리려면 민정수석이 나서야 한다. 공직자들이 규제 완화에 신경 쓰는지를 직무 감찰 차원에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병우의 민정수석실은 게을렀다. 문제의식은 빈약했고 힘을 쏟지 않았다. 우병우는 유능한 듯했지만 무능했다. 규제 완화는 좌초했다. 대통령의 언어는 나뒹굴고 처박혀 있다.

박근혜 정권의 민정수석에 전직 검사들이 기용됐다. 그들은 낯익은 경험을 재생한다. 수사·처벌의 사정(司正) 업무를 우선한다. 우병우도 사정 쪽에 집중했다. 사정은 권력의 위세를 키워준다. 하지만 사정은 민정수석실 업무의 일부다. 김성재는 “사정 쪽으로 민정수석실이 쏠리면 균형감각을 상실한다”고 지적한다. 그로 인해 청와대 이미지는 질퍽하고 어두워진다.

민정수석은 국정의 리베로다. 그 자리는 모든 업무에 걸쳐 있다. 민정수석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세련된 상상력의 소유자여야 한다. 정성진 전 법무장관은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한 민정수석에 전직 검사들은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그는 대검 중수부장을 지냈다. 정성진은 “검사 출신들은 합리적·분석적이다. 하지만 종합적 안목이나 국정 조정 업무와 관련한 경험과 단련은 많지 않다”고 했다.

권력은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해야 한다. 시대 흐름을 이끌어야 성공한다. 그것이 민정수석의 여론 관리 기능이다. 우병우는 그런 분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쪽의 상상력은 빈약했다. 검찰 경력의 참모들은 법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기준은 죄가 있느냐, 되느냐다. 하지만 세상은 실정법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정권 위기 때 그런 행태는 뚜렷해진다. 그들은 법망에 걸리느냐, 아니냐의 자기 보호를 우선한다. 국정의 무한책임 자세는 미흡하다. 그런 처신은 ‘법 꾸라지’ 논란을 일으킨다.

민정수석의 존재가치는 직언이다. 그 사례는 문종수 전 민정수석을 기억나게 한다. 그의 활약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다. 그는 대통령에게 거침없었다. 아들 김현철의 권력 개입을 성토했다. 그 단호함의 바탕은 종교적 신념이다. 검사로서의 경륜은 나중이다. 그는 기독교 장로다.

우병우는 직언의 직무에서도 패배했다. 그는 최순실 농단과 문고리 일탈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들의 기술적인 하수인으로 비쳤다. 그의 인사 검증은 말썽거리였다. 우병우는 잘못된 정보를 생산했다. 그것은 대통령의 오판과 고집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권력의 재앙으로 이어졌다.

그의 행태는 독특한 출세욕을 떠올린다. 우병우는 입지전을 갖고 있다. 그는 시골 출신으로 소년급제했다. 그는 갑부집 사위다. 그는 권력과 재력의 양면을 거머쥐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추락했다. 조선시대의 인사 기준은 출세욕구를 따졌다. 승지(承旨, 지금 청와대 참모)엔 지위상승 욕구가 두드러진 사람을 배제했다. 인사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우병우의 중용은 이젠 반면교사로 작동한다.

민정수석은 국정의 상상력을 공급한다. 지도력의 성패는 상상력에 달려 있다. 상상력은 전략적이고 섬세해야 한다. 민정수석은 그런 지혜와 역량을 가져야 한다. 그것으로 진정한 대통령 참모가 탄생한다. 박근혜 정권은 인사에 실패했다. 그것으로 정권의 허망한 비극성은 강화된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