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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에 성인용품까지…사립유치원 회계비리 천태만상

중앙일보

입력

“골프 비용, 성인용품 구입, 정치 후원금 납부, 개인 외제차 정비…, 감사대상 60곳 중 지적 사항이 없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이 도 내 사립유치원 60곳에 대한 첫 회계감사를 벌였다. 민간인 7명으로 구성된 '시민감사관'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11월까지 이들 유치원의 회계 장부를 들여다 본 결과에 대해 이같이 발표했다. 원비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은 기본이고 폐업한 업소의 영수증 첨부한 뒤 하나의 영수증을 복사해 두 곳의 유치원이 급식비를 처리하는 등 비리 유형도 천태만상이었다.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은 20일 오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도내 사립유치원 60곳의 운영실태와 첫 회계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대상은 도내 1100곳의 사립유치원 중 원아 100명 이상, 한 명의 설립자가 2개 이상의 유치원을 운영하는 곳 등이다. 다만 여주와 양평·연천·가평·포천 등 5개 시·군 소재 사립유치원은 제외됐다. 원아가 100명을 넘는 곳이 없어서다. 또 지역과 유치원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A유치원의 경우 허위서류를 작성, 지출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와 장인·장모 등에게 2억764만5000원을 부당하게 집행했다. B유치원은 원장의 아들이 유치원비가 담긴 카드로 성인용품을 구입(금액 미확인)한 사실도 적발됐다.

C유치원은 설립자의 외제차량 수리비용(81만원)을 아이들 문구용품을 구매한 것처럼 영수증을 허위로 꾸몄다. D유치원은 원비로 킹크랩·홍어회·주류를 구입했다. E유치원은 골프비용과 개인의류 구매 등에 원장 등이 개인적으로 11억9000만원을 썼다. 특히 점심과 저녁 반찬이 일부 같거나, 급식재료비를 1000원 이하로 사용하는 유치원도 있는 것으로 이번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처럼 사립유치원의 회계 부정이 가능했던 것은 감사기구로부터 회계감사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도교육청의 지도감독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감사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사립유치원의 경우 초·중·고교와 달리 법인이 아닌 개인 운영이 많다 보니 유치원 회계가 결국 설립자나 원장 개인 소유가 되는 불합리한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도내 1100개 유치원 중 법인은 93개에 불과하다.

시민감사관은 적발된 업체들 중 사적 사용으로 영리를 취했거나 무자료 거래 등 탈세 혐의가 있다고 판단된 7곳에 대해서는 국세청과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최종 결과는 내년 2월 발표한다.

송병춘 시민감사관 대표는 “현행법상 사립유치원은 학교법인이 아닌 자연인이라도 설립, 운영할 수 있다”며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에서는 유치원회계에 들어온 돈은 결국 개인 소유가 되므로 원장(또는 설립자)이 회계를 사적으로 유용해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립유치원도 법인이 아니면 운영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수원=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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