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견」행정의 본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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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사회 구석 구석에는 졸속행정이 낳은 병폐와 부작용들이 적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
단견으로 빚어지는 잘못된 행정의 책임이나 부담은 으례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차량이 폭주하자 서울 남산1호터널을 3차선으로 확장하기 위해 장장 10개월간이나 통행을 금지시키겠다는 것도 그러하고 자동차 번호판을 새로 바꾸기로 한것도 수많은 본보기 가운데 하나다.
번호판의 경우 전국 1백4O만대 차량을 다른 것으로 갈게 되면 25억여원의 돈을 차주들이 별도로 부담해야하고 교체에 따른 번거로움이나 시간낭비는 제쳐놓더라도 멀쩡한 번호판의 폐기로 자원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동차 번호판을 교체한지가 도대체 몇년이 되었는가. 자동차 보유댓수가 이제 겨우 1백만대를 넘어섰는데 번호판의 수용한계를 걱정하게 되었으니 한심스럽기만 하다.
교통부가 옛 번호판을 버리고 현행 번호판을 쓰도록 한것이 불과15년전의 일이다.
당시의 교체이유도 지금과 똑같았다. 차량이 급증해 번호판의 수용한계를 넘어 포화상태이고 뺑소니등 범법차량의 식별성을 높이기 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였다면 수용능력을 외국처럼 영구적으로 쓸수있게 했거나 최소한 번호판 색상만이라도 깊은 연구가 뒤따랐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자동차 번호배열을 12-345식으로만 조정하더라도 1천만대를, 미국식은 억대를 수용할 수 있지 않는가.
교체 이유로 내세운 두가지 중에 어느 하나도 완벽하게 못했었다는 것은 졸속행정의 표본이라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 당시에 경제개발 지표가 없었다면 또 모르겠다. 몇년후에는 인구가 얼마로 늘어나고 소득수준이 얼마만큼 향상돼 마이카붐이 일것이고 차량댓수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등의 마스터플랜이 짐짓 작성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전국의 차량댓수가 이제 겨우 동경의 절반수준도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번호판 소동을 벌이게 되었으니 이러고도 교통부가한 나라의 교통정책을 다루는 부서인지 묻고 싶다. 주먹구구로 운영하는 보잘것 없는 군소업체도 그 정도는 능히 예측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이번처럼 공청회도 열고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로부터 광범위한 의견을 들어 결정을 했던들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몇몇 공무원이 둘러앉아 정책을 입안, 곧장 시행케하는 행정편의 주의의 오랜 관료습성이 이번과 같은 병폐로 나타난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통부는 전체 차량번호의 30%가 반납번호판으로 사장되고 1개문자로는 8천8백여대밖에 발급할수 없어 현재의 번호판 체제로는 감당키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번호판으로도 각 지역별로 2백16만대나 수용가능해 차량댓수가 가장 많은 지역인 서울만해도 차량이 고작 50여만대인 현재보다 몇배가 더 늘더라도 여분이 충분히 있는 셈이다.
더구나 현재 4종으로 된 차종구분만 없애더라도 8백64만대를 수용할 수 있어 번호판 일제 교체가 시급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 시급하지도 않고 조정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존속시킬수있는 번호판을 수용한계 운운하며 구태여 일제히 교체하려는 교통부의 발상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권이 뒤따르는 번호판 교체에 무슨 꿍꿍이속이 따로 있는가를 의심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번호판 교체는 보다 신중히 연구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비단 번호판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모든 행정이 그 같은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개와 참여를 축으로하는 민주행정으로의 이행이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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