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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이 최상의 해결책" 교훈남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이 나라를 두번 흔들어놓았읍니다. 총리와 안기부장·두 내무장관·두 치안본부장·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자리를 물러나는 사태는 정변이아닌 상황에서 건국이래 처음있는일 아닌가 합니다.
-말그대로 일파가 만파의 엄청난 파문을 몰고온 사건입니다. 대공수사 40년 베테랑인 현직 치안감이 구속된 것만으로도 충격은 엄청난 것입니다.
-대검의 수사발표로 4개월에 걸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고문-조작-은폐의 3막 드라머가 일단 막을 내린 셈입니다. 그러나 「조작진상」을 처음 폭로한 사제단의 김승훈신부가 「또다른 진실」을 공개하겠다고 벼르고 조경위 가족들이 공판정에서 모든 진상을 밝히겠다고 으름장을 놓고있어 관심을 끌고 있어요. 박군사망 다음날 중앙일보(1월15일 사회면)의 특종보도가 아니었다면 영영 묻혀버렸을지도 모르는 사건이었어요.
-이 사건은 거짓으로 시작해 거짓을 고집하다 파국을 맞은 「감시받지 않은 공권력의 비극」이라고 할수있읍니다. 경찰의 조작극을 파헤치지 않은 검찰의 과오로 이 사건은 확대되고 끝내는 정부권력의 「신뢰의 위기」상황으로까지 발전한 「한국판 워터게이트사건」이라고나 할까요.
-중앙일보의 최초 보도가 2단기사로 너무 작았다는 지적도 있으나 워터게이트사건도 워싱턴 포스트가 최초로 보도할 때는 단순 주거침입사건으로 1단으로 취급했다가 점차 커져 결국 대통령을 물러가게 했어요.
-『책상을 「탁」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1차발표부터 거짓의 눈덩이 굴리기가 시작됐는데 거짓을 감추려다보니 또다른 거짓을 범하게되고 결국 체가 친 그물에 스스로 꽁꽁 묶이고만 꼴입니다.
-조경위등 5명의 경찰관이 범행을 저지르고 그중 2명만 총대를 멜때는 대공수사에 공이 있어서 기껏해야 「징계정도 처벌을 받을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뜻밖의 중형을 받을것이 확실해지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는 거지요. 죄없는 학생을 고문해 죽여놓고 징계정도 처벌을 예상한 「조직의 의식구조」는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입니까. 바로 거기 비극의 씨앗이 있고 그같은 의식구조는 아직 완전히 사라진것은 아니라고 할수 있어요.
-사건수사는 국민들이 처음부터 의심을 가졌던 사항을 일단은 풀어준 것으로 보입니다만 검찰의 책임부분과 함께 ▲박군고문의 실상 ▲경찰고위책임자의 가담여부 ▲구속경관 가족들에 대한 협박회유등 보다 명쾌하게 밝혀져야할 부분이 남아있읍니다.
-먼저 가혹행위중 전기고문이 가해지지 않았나 하는 의심은 아직도 지울수 없읍니다.
-손등에 남아있던 상흔, 폐속의 출혈반등은 몇차에 걸친 수사발표에서도 끝내 규명되지 않았읍니다.
-그렇습니다. 상처는 그렇다치더라도 출혈반은 검·경이 주장하는 박군의 폐질환으로는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부분이죠.
-유일한 증거물인 시신이 없는이상 아무리 많은 의문점이 제기되더라도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는거죠.
-만약 시신만 보존됐더라면 이사건의 전모는 초기단계에서 조작임이 밝혀졌을 겁니다.
-조경위·강경사 가족면회 제한, 변호인 선임에서의 압력등도 역시 사건조작에 검·경이 관여했을거라는 의심을 사게됐읍니다.
-수감자에대한 면회나 접견때 반드시 입회 교도관이 대화내용을 기록해 상부에 보고하는 것 아닙니까.
-그 보고서를 보면 명백히 사건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감지할수 있었을 것이고 그 시점 또한 사건이 표면화되기 3개월여 전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이러한 보고가 경찰이나 검찰의 어느선까지 도달됐고, 이에대해 관계자들이 어떠한 조처를 취했는가가 관계자들의 책임소재를 따지게 하는 주요 근거가 되는 것이죠.
-특정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이번처럼 검찰이 비난의 대상이 된적이 없었읍니다. 특히 고문경관 조작부분까지 처음 수사했던 서울지검 수사팀에 재수사를 맡긴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봐야죠.
-더구나 서울지검 수사팀은 박군 사망직후 현장검증도 하지 않은채 졸속수사로 전격 기소한 과오가 있는데다 2월이후 고문경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사에 착수하지 않아 직무유기혐의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었읍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내놓고 거론은 안됐지만 검찰내부에서조차 「검찰이 몰랐을리가 없다」는 추측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검찰로선 시인도, 부인도 할수없었던 아픈 대목이고 앞으로도 불씨로 남게될 소지가 있어요. 차제에 고통이 크더라도 도려낼 부분은 도려내자는 주장이 검찰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읍니다.
-이 사건을 보는 당국의 시각은 언론이나 시민들의 시각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것 같아요. 여론의 압력에 밀려 광범한 문책을 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할 성격의 사건이냐는 회의가 없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눈치도 보입니다.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공안책임자총사퇴」를 앞장서 강력히 주장한것으로 알려진 정호용전내무장관은 개각발표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장의 강도높은 언론성토를 했읍니다.
『이번 사건이 이처럼 확대된 것은 전적으로 언론때문이다』『신문이 멋대로 쓰는 바람에 국민들이 아무것도 안믿게됐다』『이러다간 언론때문에 나라가 망하는것 아닌지 모르겠다. 언론이 정신을 차려야한다』『언론도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할것』이란 얘기였죠. 정부가 이번 사건을 보는 시각의 한면을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볼수 있어요.
-실제로 정부대책회의에서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를 정식으로 문제삼아야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장취재에서의 어려움도 많았지요.
-조작·은폐부분의 내막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취재원은 조경위와 강경사의 부인이었는데 걸핏하면 기도원이나 친척집에 몸을 피해있기 일쑤여서 취재진들이 이들의 귀가를 기다리며 집앞에서 선채로 밤을 꼬박 새우느라 애를 먹었읍니다.
-수소문끝에 겨우 만나도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갈팡질팡하게 했어요. 조경위의 부인 김모씨의 경우 지난24일 기자들을 만났을 때는 『4월18일 면회때 1억원이 입금된 통장을 치안본부에서 준비했다는 말을 들었다』고하다가 27일에는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는등 심한 정신적 갈등을 느끼는 눈치였지요.
-또 위로금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생활비조로 매달 1백만원씩을 받는등 3천1백30만원을 받았으나 처음에는 『위로금 3백만원에 매달50만원씩만을 받았다』고 하는등 말이 엇갈려 진상을 파악하기가 힘들었읍니다.
-사건수사는 종결되었읍니다만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사건조작·은폐를 처음 폭로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측은 아직도 조·강 두형사의 「무죄」를 주장하고있어요. 가족들도 같은 주장이고요. 현장검증에서 두사람은 범행을 재연했지만 재판과정에서 또다른 주장을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번사건은 우리사회에서 「권력의 도덕성과 윤리」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읍니다. 당사자인 경찰·검찰은 물론 각분야에서 자생의 움직임이 크게 이는것 같습니다.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라는 윤리가 확고히 정착돼야할 것입니다.
-경찰·검찰의 사기저하를 걱정하는 견해도 있었지요. 크게보면 사회발전에 따른 성장의 진통이라고 볼수있어요. 거듭거듭 다짐한대로 「뼈를 깎는 각오로 경찰과 검찰이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사건이 진행되는동안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은 정말 대단했읍니다. 그 관심과 열기가 보다 사람답게 사는 성숙한 민주사회 성취의 원동력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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