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중공 신뢰회복엔 성공|「대소 편향」벗어나 등거리외교로 복귀|김정일 세습보장·중공개방정책 확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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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김일성이 24일 북경을 떠남으로써 중공방문의 공식일정은 사실상 끝났다.
82년의 공식, 84년의 비공식에 이은 김의 이번 중공방문으로 중공수뇌진과 어떤 합의를 보았는지는 아직 공동발표문이 없어 베일에 가려져 있을뿐이다.
김이 지난해 소련을 방문했을때 공동성명이 없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공동발표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일요일 북경역의 환송식이 의미하듯 도착때부터 출발에 이르기까지 곁으로 나타내 보이는 각종 의식이 전례없이 성대하게 거행된 것은양측의 「돈독한 우호관계」를 내외에 선양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중공최고지도자 등소평이 김의 도착때 취재카메라앞에서 포옹을 되풀이하는 과잉제스처를 쓰기도 했고 이례적으로 환송의식을 화려하게 베푼 것등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등의 『우린 다시 쉽게 만날수 있다』는 마지막 작별인사나 조자양총서기서리경 수상의 『우리는 광범한 문제에 관해 완전히 견해를 같이 했다』 『이번 김의 방문은 김의 중공에 대한 신뢰의 표시』라고 한 만찬연설등이 이 「파격적 방문」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만큼 서로간의 신뢰회복문제가 중요했다는 얘기다.
북한은 호요방전중공총서기의 개방정책에 따른 대미등 서방접근 추세에 반발, 83년이래 대소편향의 외교를 고수해 왔다.
김은 85년 중공의 방문초청을 거절할 정도로 중공에 대해 등을 돌렸다.
따라서 이번 북경과 평양의 5년만의 상봉은 북한이 소련및 중공과 등거리 동맹관계를 형성한 종래의 양국간의 「균형자 역할」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된셈이라고 볼수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김일성은 또 이번 방문을 통해 암묵적으로 김정일에의 권력세습을 관철하기 위한 또하나의 발판을 구축하는 정치적 데먼스트레이션을 일단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관측된다. 중공으로선 최대의 현안인 경제개발정책의 적극적 추진을 위한 주변정리의 하나를 해결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한반도정세의불안은 중공에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의 이번 북경방문은 이러한 외양과 원칙적인 성과 외에 특별히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화에 관해선 회의적인 관측도 나오고있다.
양측 수뇌회담에서 한반도정세와 관련한 대한국및 서울올림픽에 대한 비방발언이 없었고 경제문제에 관해서도김이 천진에서 항만시설공사와 시계공장등을 시찰하는 정도가 눈에 띄는 움직임이다.
또 등이 김에게 중공 개방정책의 상징인 침천경제특구문제를 거론한것은 북한도 중공식 경제개방에 관심을 갖도록 시사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결국 김은 중공으로부터 자신의 「정치적 권위」에 대한 대점을 받고 중공의 경제·사회적인 개혁정책을 직접 확인한것이 이번 방문의 주요 내용인것 같다.
한편 김이 북경을 향할 때 중공 오학겸외상이 아프리카로 향해 출국, 김의 북경항은 6월초 조자양의 동구순방을 앞두고 서둘러 마련되었다는 인상이 짙다. 이점은 양측이 광범한 현안문제를 자세하게 숙의할 기회가 되지못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사정의 하나일수 있다.
또 등과 김의 회담때 중공 신화사통신의 공식보도에서『이견없음』이라는 첫 번째 보도가 두번째에서 빠졌다는 일부보도는 양측이 특히 국제관계에 있어 『결코 견해의 완전한 일치를 보지못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김이 실제적으로 중공지도자들과 무엇을 논의했고 어떤문제에 합의했는가 하는 점은 결국 종래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북한과 중공이 이들 거론된 현안문제의 정책시행과정에서 알게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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