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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역도산, 내 결혼승락에 눈물 흘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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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프로레슬링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역도산(力道山)의 부인 다나카 게이코(田中敬子·60)가 최근 회고록 ‘남편 역도산의 통곡’을 펴냈다. 역도산 사후 40년만에 털어놓은 비사(秘史)다.

역도산은 태평양전쟁 후인 1950~60년대 초반 거구의 미국 선수들을 쓰러뜨리며 일본 국민들의 영웅이 됐다. 한국출신이었기에 한국과 북한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전설처럼 이름이 전해 내려온다.

역도산은 인기절정이던 63년12월 일본 도쿄(東京)의 번화가인 아카사카(赤坂)의 한 술집에서 폭력배와 말다툼 끝에 배를 칼에 찔린 후 후유증으로 39세에 숨졌다. 결혼 6개월에 임신 3개월째였던 새댁 다나카를 남겨놓고.

지난 1일 도쿄의 오쿠라호텔에서 만난 그는 "당시 여기서 결혼했는데 축하객이 3천여명이나 왔다"며 회상에 잠겼다. "당시 일본항공 국제선 승무원이었는데 62년 내 사진을 본 남편이 일부러 내가 탄 비행기에 탑승하는 등 끈질기게 구애작전을 폈어요. 프로포즈를 받아들이자 그는 눈물까지 흘리더군요. 남편은 이미 다른 여자 두명(일본인.북한인)과의 사이에 자녀가 있었지만 첫번째 정식 결혼 상대자는 저였어요. 남편은 '당신이 너무 순진해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역도산의 본명은 김신락(金信洛)으로 함경남도 출신이다. 처음에는 씨름선수였으나 39년 일본 스모 선수가 됐다.

그는 "남편은 41년 일본으로 귀화해 이름이 하쿠다 미쓰히로(白田光浩)였는데도, 차별을 많이 받아 스모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역도산의 사망원인에 대해선 지금도 폭력단의 계획설 등 말이 많다.

다나카는 "폭력단 대표들이 찾아와 정식으로 사과했다"며 "수술 때 마취약을 보통사람의 2배 정도 쓰는 등 의료사고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편이 숨지기 10여일 전 자다가 갑자기 깨어나더니 '백발 노파가 칼인지 죽창으로 찌르려고 했다'고 소리질렀다"며 "남편의 죽음은 일종의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상과부 40년이면 긴 세월이다.

그는 "환갑을 맞아 남편의 모습을 제대로 남기고 싶고 딸도 권해 회고록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역도산에 대해 "프로레슬링 선수이자 실업가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남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후일 총리).이시하라 유지로(가수).미소라 히바리(가수) 등 유명인들과 교류했고, 그의 장례식에는 1만2천여명이나 참석했다"며 "정치 입문도 권유받았지만 고사했다"고 말했다.

"김일성 주석의 50회 생일(62년)에는 남편이 고급승용차를 선물했고, 북한에 있는 남편 생가는 지금도 잘 보존돼 있어요. 한.일 국교 수교가 추진되던 63년에는 한국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그의 꿈은 휴전선에 역도산 동상을 세우는 것이다. "한반도와 일본의 평화를 기원하던 남편의 마음을 전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유럽 신혼여행 등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환하게 미소짓다가도 억울한 죽음 등 슬픈 비사를 털어놓을 때는 몇차례나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았다.

"남편은 정말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다시 만나면 내가 먼저 청혼할 겁니다. 영혼이라도 한번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역도산에 대한 그의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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