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군사건 진상밝힌 「정의 구현 사제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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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유신체제를 반대한 지학정주교의 투옥을 계기로 60여명의 소장신부들이 74년9월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과 역사현실속의 사명을 새삼 다짐하면서 결성한 사제협의체.
정의구현사제단은 이같은 결성 취지에 따라 민주화ㆍ인권운동등을통해 가톨릭교회의 현실참여 활동을 앞서 이끌어왔으며 기독교계의 혁신세력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유신체제의 비판으로부터 시작된 현실참여 활동은▲현실고발▲시국선언▲기도회등이 활동의 주요내용.
79년까지는 서울 명동대성당을 중심한 인권운동에 주력,지주교 구속사건·명동성당 인권기도회·「시노트」신부사건·인혁당사건 동일방직사건등에 대한 성명서와 4월선언(78년)·제헌절 메시지(79년)등을 발표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은 여하한 경우에도 존중돼야한다는게 정의구현사제단의 일관된 인권운동 지침이다.
그러나 천주교 자체내에서도 이들의 현실참여가 때로는 지나친「영역추월」이 아니냐는 의문과 비판을 제기하는 예가 없지도 않다.
유신체제에 정면 도전한 3·1명동사건(76년)때는 사제단의 핵심인물인 함세웅신부가 구속 기소돼 2년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80년 5·18광주사태때는 현장을 담은 필름을 복사,배포해 오태정신부가 계엄하의 군재에 회부되기도 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같은 맥락의 인권운동을 계속하면서도 특히 정치적 민주화에 역점을 두어왔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주교회의 인준의 교단 공식기구는 아니지만 현재 40대 중·후반의 중견신부가된 당초의 회원60여명을 주축으로 활발한 사회참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평신도를 중심한 교단 공식기구인「정의평화위원회」와 활동내용이 비슷하지만 신부들만으로 구성됐다는 점과 임의단체라는 점이 다르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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