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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산불 보고 느낀 처참함 노래에 담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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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2년 만에 신곡을 낸 하림은 “LP판에 맞춰 최대 4분, 테이프 길이에 맞춰 15곡 등 규격에 맞춘 정답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2년 만에 신곡을 낸 하림은 “LP판에 맞춰 최대 4분, 테이프 길이에 맞춰 15곡 등 규격에 맞춘 정답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수 하림(40)이 신곡을 발표했다. 그간 신치림 등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솔로로는 2004년 정규 2집 ‘휘슬 인 어 메이즈(Whistle In A Maze)’ 이후 12년 만이다. 4일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음악 플랫폼인 리슨을 통해 공개된 신곡 ‘레인보우 버드’엔 그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래바람이 일렁이는 사막에 묻어오는 습기가 전해진달까. 그리스 전통 악기인 부주키와 터키의 목동 피리 카발에 아코디언, 첼로 등이 더해져 만들어진 이국적인 앙상블은 도입부를 듣는 순간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그에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하림 12년 만의 신곡 ‘레인보우 버드’
세계 떠돌며 이국적 멜로디 품어
아프리카에 기타 보내기 운동도
“말라위 어린이들에게 예술교육
무뎌진 감성 되레 일깨우고 오죠”

“사실 제가 음반을 안내서 그렇지 만들어놓은 노래는 많아요. 이 노래도 7~8년 전에 그리스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난 산불을 보고 착상한 건데요. 온 산이 까맣게 타고 있는 걸 보니 너무 처참하더라고요. 이게 지옥인가 싶기도 하고. 그 장면 위로 새들이 날아가는 걸 보고 습작 곡으로 만들어 어디선가 불렀는데 한 큐레이터 분이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보내주셨어요. 그렇게 예술가들을 위한 노래가 탄생하게 된 거죠.”

이처럼 그의 노래는 홀로 탄생하는 법이 없었다. 정처없이 떠돌 때면 현지의 색채가 잔뜩 묻은 소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악기는 듣도 보도 못했던 멜로디를 뿜어냈다. 히피처럼 떠돌게 된 것도, 10여 개의 전 세계 악기를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2008년 방송 촬영 차 나미비아에 다녀온 게 인연이 되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기타를 보내는 프로젝트 ‘기타 포 아프리카’를 진행하고 있는 하림은 이번 달에도 열흘간 말라위에 다녀왔다고 했다.

말라위에는 무슨 일로 갔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하는 평창문화올림픽을 위한 아트드림캠프에 다른 예술가 8명과 함께 다녀왔다. 겨울이 없는 남반구에 사는 아이들에게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고양하고자 콜롬비아·베트남·인도네시아로 각각 나뉘어 방문해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본업이 뮤지션인데 예술교육에 적극적이다.
“교육이 아니고 교류다. 한 번 다녀오면 우리가 배우는 게 더 많다. 옛날처럼 주는 쪽과 받는 쪽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들에게 음악 이론을 가르친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음악을 즐기는 법을 일깨워준다. 덕분에 함께 공연하는 밴드 ‘아프리카 오버랜드’ 멤버들이 각각 1~2곡씩 쓰고 왔으니 오히려 남는 장사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기타를 보내는 건가.
“처음에는 그곳에서 받은 음악적 영감을 어떤 방식으로든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에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해지는 아프리카’와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당신을’ 노래를 아프리카어와 영어로 들려주고 왔다. 사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무뎌지는 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몇 년 전에 기타를 줬던 말라위 여성 레베카를 만나 현지에서 성공한 아티스트가 된 걸 보니 다시 초심이 되살아났다.”

하림은 아프리카적 관점에서 보면 “음반은 발표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누구나 자기가 만든 노래가 있고 다 같이 따라부르며 즐길 수 있는데 형식에 연연할 필요가 없단 얘기다. “텃밭에서 키우던 상추를 뜯어먹다 남은 걸 내다 팔아서 맛있었다고, 처음부터 팔기 위해 작심하고 키우면 오히려 맛이 예전만 못하지 않겠냐”는 지론이다.

하지만 “예술가도 기획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다. “세상은 모두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예술가들만 거기에 녹아들지 못하면 세상을 향한 불만만 가득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방황하고 있는 많은 후배들이 다양한 길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다 며칠 안에 악기를 마스터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면 음악이 괴로워질 뿐인데.”

글=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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