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 메시’ 아프간 소년 꿈 이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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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비닐봉지로 만든 유니폼을 입은 아흐마디. [도하 신화=뉴시스]

비닐봉지로 만든 유니폼을 입은 아흐마디. [도하 신화=뉴시스]

지난 1월 인터넷에선 한 아프가니스탄 소년의 사진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년은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본뜬 하늘색과 흰색 세로 줄무늬의 비닐봉지를 입고 있었다. 비닐봉지엔 손글씨로 메시의 이름과 그의 등번호 숫자 10이 적혀 있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10년 넘게 내전을 겪은 아프간 동부 가즈니 농촌지역에 사는 6세 소년 무르타자 아흐마디였다. 아프간의 참혹한 상황, 그런 참혹함도 꺾지 못한 소년의 메시 사랑은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고스란히 전 세계에 전해졌다. 아흐마디가 메시 유니폼을 사달라고 조르자 아홉 살 위의 형 하마욘이 비닐봉지와 매직펜으로 유니폼처럼 만들어 줬다는 사실도 이후 전해졌다.

메시 만나는 게 소원이던 꼬마팬
영웅 품에 안기고 경기도 지켜봐
“축구장은 처음, 행복하고 꿈만 같아”

소년의 꿈이 이루어졌다. 소년은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29·FC바르셀로나)를 만나 손을 맞잡았고 품에 안겼다. 자신의 영웅인 메시가 뛰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아프가니스탄 소년 아흐마디가 바르셀로나와 알 아흘리의 친선경기 직전 메시(앞줄 왼쪽) 등 바르셀로나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도하 신화=뉴시스]

아프가니스탄 소년 아흐마디가 바르셀로나와 알 아흘리의 친선경기 직전 메시(앞줄 왼쪽) 등 바르셀로나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도하 신화=뉴시스]

영국 BBC 등 외신들은 아프간 난민소년 아흐마디가 14일 카타르 도하에서 메시를 만났다고 전했다. 이날 도하에선 프로축구 FC바르셀로나와 알 아흘리(사우디아라비아)의 친선경기가 열렸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아흐마디를 초청했다. 아흐마디는 경기 전 입장통로에서 메시 품에 안겨 떨어지지 않았다. 두 아들을 둔 메시도 ‘아빠 미소’를 지으며 아흐마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흐마디는 메시 손을 잡고 그라운드에 입장했고, 킥오프 지점에 축구공을 내려놓은 뒤 다시 메시 품에 안겼다.

한 장의 사진으로 세상에 알려진 ‘비닐봉지 메시’ 아흐마디는 지난 2월 유엔아동기금을 통해 메시의 사인 유니폼을 선물받았다. 유명세에는 고초도 따랐다. 납치위협이 이어졌다. 아흐마디는 지난 5월 아버지와 함께 친척이 살고 있는 파키스탄으로 거처를 옮겼다. 소년의 아버지 무함마드 아리프는 당시 “아들이 유명세를 타자 ‘왜 이슬람교의 쿠란을 가르치지 않고 축구를 가르치냐’는 협박을 수차례 받았다. 거액을 노린 무장단체가 아들을 납치할까봐 걱정됐다”고 말했다.

메시는 소년 앞에서 전반 32분까지 뛰며 한 골을 터뜨렸고, 바르셀로나는 5-3으로 이겼다. 자신의 영웅이 뛰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본 아흐마디는 “축구장은 처음이다. 나의 영웅을 만나 정말 행복하고 꿈만 같다”고 말했다.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 측은 “이것이 전 세계가 원하는 모습이다. 영웅을 만나려는 소년의 꿈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아흐마디에겐 또 하나의 꿈이 남았다. 메시처럼 멋진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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