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모순된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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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얼마전 워싱턴에서 있었던 한 세미나에서 오는 7월 물러나게될 「블랙모」 한국과장의 한국정치에 관한 견해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국무성 한국과장이라는 자리는 오퍼레이션룸(상황실)에 수집되는 한국에 관한 정보를 제일 먼저 받아보는 자리다. 그가 한번 걸러낸 분석자료는 미국 대한정책의 기본골격으로 정책시행에 그대로 반영되게 마련이다.「블랙모」씨는4·13조치 이후의 최근 한국 정정을 두고 안타깝다는듯 민감한 부분에서는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하며 그의 속생각을 비췄다. 그는 한국의 경우 「정치」와 「경제」, 그리고 「안보」문제가 상호 깊숙이 연계되어 있기때문에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상호모순(ambivalence)되는 견해를 갖기 쉽다고 말했다.
『정치 혼란이 제2의 6·25를 초래할수도 있다』 『경제안정만이 민주화의 첩경이다』, 또는 『대학가의 데모가 한국경제의 후퇴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식의 상호연관된 생각이 정책결정자들의 대한시각을 단순하지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인 자신의 모순된 사고방식이 「아웃사이더」를 더욱 당혹하게 한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한국인은 외국인들의 정치개입은 이젠 그만두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압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에게 이상하게 비친 것은 한 사람이 이 두가지의 상반된 견해를 자리에 따라 다르게 얘기하는 경우다.
그가 참사관으로 한국근무 6년동안 접촉했던 한국인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으리라는 것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인사들이 상호모순된 말을 하고 다닌다는 지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얼마전까지 흑이라고 했다가 하루가 다르게 백이라는 모순된 논리를 식은죽 먹듯 펴는 행태가, 그런 현실이 우리의 정치문화와 전혀 상관은 없는 것인지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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