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적인 타이티여인의 몸매에 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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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75년8욀 「세계 여성의 해」를 맞아 세계의 여인과 풍물을 화폭에 담기위해 서울을 떠났다. 3개월 남짓한 기간에 타이티·하와이를 거쳐 유럽 여러나라와 이집트·인도·대만등지를 돌아오는 주마간산격의 여행이었으나 글로 표현 못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첫 행선지인 타이티로 떠나기에 앞서 나는 줄곧 19세기의 대화가 「고갱」의 숨결과 말로만 들어온 남국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상상했다. 도착하고보니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온통 이국적인 풍경이 나를 둘러샀다.
섬 어디를 가나 열대의 꽃 하이비스커스와 아름다운 꽃나무들이 그윽한 향기를 품기고 있었다.
타이티의 여인들은 다소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관광객들의 시달림 때문에 「고갱」을 사로잡았던 그 미소가 사라진 것일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머리카락과 관능적인 몸매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할만큼 현란했지만 웃는 얼굴을 찾아보기는 어려뒀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어둠이 깔리고 나면 이 섬의 표정도 바뀐다. 길거리에 형형색색의 등불이 켜지고 꽃모자와 꽃목걸이를 팔러나온 아가씨들이 행인들을 부르는가 하면 원주민들의 노래 소리와 관광객들의 환성이 한데 어우러져 별빛아래 파도를 타고 퍼져나간다. 이 때만은 꿈과 사랑의 섬이라 할만하다.
좀 더 원시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주변의 섬을 찾고싶었으나 일정에 쫓겨 생략하는 수밖에 없었고 대신 「고갱」의 아득한 체취라도 느낄수 있지않을까하여 고갱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러나 원화는 없고 모사품만 걸러있어 서운하고 쓸쓸했다. 다만 그가 생전에 쓰던 화기와 가구는 옛날 그대로 진열돼있어 그런대로 호기심을 채울수 있었다.
따사로운 햇빛이 야자수잎 사이로 내리비치는 고갱미술관옆 해변의 모래밭을 맨발로 밟으며 퇴색한 타이티의 순수한 정취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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