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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든 "의무" 늘어난 "자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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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30일 정부·여당 당정협의회에서 확정한 「불교재산관리법」개정방향은 의무규정의 삭제 또는 대폭완화를 통해 불교의 자주-자율화를 지향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법의 명칭부터 「불교재산보존법」으로 바꾸어 관치의 인상을 없애버린 개정시안은 불교계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주지 관등록제를 「신고제」로 완화, 종단의 자율적 인사권을 보장했다.
두번째로 중요한 내용은 사찰의 관등록을 50년 이상된 전통사찰에만 국한시켰다는 점이다.
문공부가 지난해 6월부터 여러차례 불교계 의견을 수렴, 신중한 검토를 거쳐 내놓은 이 같은 개정방향은 관제불교화를 꾀했던 일제시대 「사찰령」의 견습이 담겨있는 현행 불교법의 문제점을 시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사찰의 재산권 행사를 비롯, 관할청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의무규정들이 대폭 삭제돼 불교재산의 활용폭을 크게 넓혀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삭제의무규정은▲사찰예산 범위내의 차입·채무보증▲사찰경내 건물 또는 경내지의 용도변경▲재산목록의 작성 제출▲재산의 증감보고▲수입지출예산의 신고 등이다.
사찰 또는 불교단체들이 허가를 받거나 제출해야 하는 이 같은 의무규정 삭제는 나쁜 방향으로 운용할 경우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도 없진 않지만 건전하게 활용만 한다면 사찰재정의 운신폭을 크게 넓혀 불교발전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개정의 핵심내용인 주지인사의 관할청(시·군)신고는 필요한 구비서류 및 절차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주지신고제는 불교계 일각에선 더욱 완화해 「통고제」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현재로서는 실현성이 희박하다.
사찰주지인사의 자율성은 일단 제도적인 면에서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게 됐다.
그러나 외부적·구조적인 문제에 못지 않게 불교계 자체내에 굳어져가고 있는 「주지 중심주의」 훈습을 덜어버리고 불교 고유의 전통인 「산중 공의제」 「대중울력」 등을 되살리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고는 주지인사의 자율성 확립은 어렵다는게 많은 불교계 인사들의 의견이다.
사찰등록의 규제 완화도포교적 성과면에서는 큰 기대를 모으지만 개신교 일각의 프리미엄을 붙인 「개척교회」전매와 같은 상업주의나 부동산 투기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종교를 향한 일반의 도덕적·윤리적 요구는 아주 높고 엄중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사회의 비리보다 종교계의 비리는 엄청난 비판을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원론적인 종교간의 형평원칙에서 본다면 타종교에 없는 불교만의 불재법은 마땅히 페지돼야 한다는 단순논리가 가능하지만 한국불교사찰은 민족문화유산의 보고라는 점과 민족 공유개념을 가졌다는 점을 감안, 다소의 제약은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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