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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적극주의」로 공정한 판결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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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올해 법의 날 포스터에는 굳게 악수한 두손 위에 비둘기 한마리가 나래를 펴고있다. 그 위쪽에 「준법, 평화와 번영을 위한 약속」이라는 구호가 눈에 띈다.
법의 날에 새겨야 할 다짐과는 매우 거리가 먼 그 포스터를 보면서, 저것은 차라리 평화봉사단 선전용으로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득 교도소에서 배운 「비둘기」라는 은어가 연상되었다. 그것은 갇혀있는 사람이 담넘어 자유천지로 띄워보내는 밀서를 뜻한다. 그러므로 「비둘기」에는 자유를 잃은 상황 속에서의 절박한 숨결이 얼룩져 있다. 법의 날 포스터의 비둘기를 차라리 이렇게라도 해몽한다면 묘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덧붙여서 「평화와 번영」이라는 아지랭이 대신 「정의와 인권」을 강조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아쉬워해 본다.
법의 날은 관념타령을 하는 날이 아니다. 법의 지배니, 법치주의니 하는 것은 관념의 화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난 테제이며, 정치 권력에 대한 법의 우위를 실현하고자 하는 호민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릇된 법치와 힘의 횡포를 진행하는 이 땅의 권력은 오늘 이 시간부터 대오반성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마땅하다.
법의 날은 권력자가 단상에 군림하여 국민들보고 법을 지키라고 판에 박은 말을 하기보다 국민들이 지배층에 대해서 제발 법에 어긋나는 권력행사 좀 그만하라고 호통을 쳐야하는 날이다.
오늘날 한국의 법치주의는 입법, 행정, 사법 그 어느 분야를 보아도 중태아닌 곳이 없다.
우선 법의 체통부터 온전하지 못하다. 법의 정립단계에서 벌써 비순수, 비정상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다.
계엄령하의 통과·무더기통과·날치기 통과 등 「하면 된다」식으로 생겨난 법률도 무성하다.
헌법 이야기는 제쳐두고서라도 그에 버금하여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국회의원선거법, 대통령선거법, 국회법, 언론기본법, 형법 중 국가모독죄,노동3법, 출판사·인쇄소등록에 관한 법률 등이 모두 그런 출생과정을 겪었다. 그러니 입법부에서 만든 법에 의해서만 국민을 다스린다는 법치주의원칙은 허구화되고 말았다.
심지어 국회도 행정부측에서 만들어준 국회법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무엇보다도 국가규범의 형식적 합헌성이라도 회복시키지 않고서는 올바른 법치의 명맥을 살릴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헌법이 법률에 의해서, 법률은 시행령에 의해서 역으로 지배당하고 변질되기 때문에 법의 형해화는 가중되었다.
법의 시행에 있어서 정부의 독선이 개입될 여지는 훨씬 크다. 권력의 변의위주로 법이 발동되다보니 국민은 순화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특히 기본권의 침해에 대해서는 이제 무슨 변명도 필요치 않게 되었다.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어떤 실상에 있는지는 백번 천번 경험했고 바로 이 순간에도 경험하고 있는 터이다.
성고문을 가한 자는 제집으로 보내고 그 만행을 규탄한 사람은 감옥으로 보내는 세상, 고문살인을 해놓고도 경찰 사기만 내세우면서 항의집회도 추모행사도 못 열게 하는 세상이다.
이른바 민주화조치는 한때는 내각제개헌안 수용과 교환조건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나중엔 「독자적 실시」를 공언하기도 했으나 국민의 체감온도로는 오히려 점점 더 추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는 소위 「보도지침」사건이 만사를 상징한다. 그런 식의 언론통제를 부끄러워하는 대신 그것을 폭로한 사람들을 국가모독과 외교상 기밀누설로 걸어 구속시켰다.
사법적 측면에 대해서도 말을 하자면 한이 없다. 「재판권의 독립과 법관의 양심」은 바로 오늘 대한변협이 주최하는 법의 날 기념 세미나의 주제로 다루어지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미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분노와 실망으로 번져가고 있다. 근래에 일고 있는 법정안팎의 격랑 또한 사법부에 대한 신뢰상실의 반사현상에 다름 아니다.
먼저 대법원부터 사법의 자기억제를 떨쳐버리고 이른바 「사법적극주의」로 나아가야만 위헌법률에 의한 전제를 견제할 수가 있다. 그리고 시국범에 대한 재판에서도 일말의 의혹이 없도록 의연하고 공정한 판결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정전반에 어느 구석이 중요하지 않을까마는 지금 우리에겐 입헌민주체제의 ?원 이상으로 시급한 과제는 없다. 그러기에 여당조차도 개헌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국민적 합의라고 외쳤다.
그러던 것이 어느날 뜻밖에도-아니 예상한 대로-재호헌으로 되돌아서고 말았다. 이처럼 개헌문이 말한마디로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면 정당은 무엇이며 국민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국민주권을 외면하고서야 참된 평화와 번영이 어떻게 이룩되겠는가. 위정자들의 일일삼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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