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홀로…』 소설 『비명을…』 "무명"돌풍|4개 대형서점 4윌의 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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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독서층이 얇은 국내 출판계에선 한달에 1만부 정도만 팔렸다 하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볼 때 1만부 정도가 팔릴만한 책은 흔하지 않다. 이번 달에는 이처럼 「흔하지 않은 케이스」가 여러 권에 나타나 독자들에게는 놀라움을, 출판사들에는 뜻밖의 용기(?)를 주고 있다.
아울러 이같은 뜻밖의 베스트셀러 덕분에 이번 달의 베스트셀러 순위(종로·교보·신촌·한국출판판매서적 공동집계)는 지난 달에 비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가장 파란을 일으킨 책은 무명시인 서정윤씨의 시집 『홀로서기』.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시집은 그러나 한달만에 4판, 1만여부가 팔려나가 4월의 베스트셀러 시부문 2위에 올랐다. 특히 일체의 광고를 하지 않고도 최근 1주일 동안에는 『접시꽃 당신』의 아성을 무너뜨릴 정도의 이변을 연출했다.
81년 시인이 영남대 재학때 교지인 『영대문화』에 『홀로서기』가 실린 후 지금까지 대학생들 사이에 구부으로 애송되어 왔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지만 『홀로서기』의 돌풍은 출판사들로 하여금 「동일사례기대」에의 흥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소설부문에서는 근소한 차로 장기 베스트셀러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사람의 아들』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으며 최근 극장가에서 개봉된 동명영화 탓인지 『레테의 연가』가 3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가장 주목을 끄는 소설은 『비명을 찾아서』다. 기존의 등단형식을 무시하고 이 장편소세 한편으로 문단에 데뷔한 저자 복거일씨가 15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4년간 집필한 이 작품은 「이등박문이 하르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저격되지 않았다면 87년도의 한반도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하는 가상소설로 4월 초 출간되자 마자 열홀만에 재판에 돌입, 지금까지 5천부가 팔러나갔다. 이와함께 지난해 6월이후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머물렀던 조성기씨의 『야훼의 밤』은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가장 순위 변화가 심했던 비시·소설부문에서는 지난해 연말부터 꾸준히 팔리기 시작한 『오늘 다 못다한 말은』이 1위에 올랐다. 작가 이외수씨가 외국 문인들의 명산문들을 뽑아 엮은 이 책은 지금까지 7만, 4만여부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지난해 8월부터 줄곧 이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달려왔던 『비밀일기』가 마침내 4위로 밀려난 것도 특징.
서울대 박종철군 고문사건 등을 다룬 금중배씨(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사회비평집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가 한달만에 1만5천부의 판매량을 돌파, 3위에 오른 것은 베스트셀러가 당대의 사회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례며 83년 중반부터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혀온 유물론적 변증법 해설서 『칠학에세이』가 5위로 솟아오른 것은 대학신입생들의 수요급증 때문인것으로 풀이된다.
시인 유안진씨의 베스트셀러 수필집 4권 중 무려 3권 (『그리운 말한마디』『지란지교를 꿈꾸며』『부르고싶은 이름으로』)이 10위 밖으로 밀렸으나 그대신 유씨의 신작 에세이 『먼 훗날에도 우리는』이 베스트셀러에 진입, 유씨의 팬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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