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재용 “최순실 존재 안 건 2월 그 언저리쯤 아닌가…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기업 총수 청문회 비선 실세와의 관계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대기업 총수와 참고인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오종택 기자]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대기업 총수와 참고인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오종택 기자]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청문회’는 말(馬)로 시작했다. 여야 의원들은 최순실씨의 딸인 승마 선수 정유라씨에게 기업들로부터 각종 특혜가 제공됐는지 여부를 먼저 추궁했다. 삼성그룹은 최씨의 딸 정씨에게 수십억원을 들여 말을 사 주고, 최씨와 정씨가 소유한 비덱스포츠와 37억원에 달하는 비정상적 계약을 맺었다. 이와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6일 “적절하지 못하게 지원한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최씨의 존재를 언제부터 알았는지에 대해서만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며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최씨의 비덱스포츠에 37억 송금
이 “어쩔 수 없는 상황 있다 들어”
구체적 이유는 밝히지 않아

비선 실세인 최씨의 존재를 인지한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제3자 뇌물죄’가 성립되는지와 직결된다. 검찰은 대기업들이 최씨가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임을 알고 최씨 모녀에게 재단 출연금 등의 ‘뇌물’을 전달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대통령과 한 몸인 최순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원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승마협회 회장사(社)를 맡았다. 승마협회는 삼성이 회장사를 맡은 이후 승마 발전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했고, 삼성은 이 계획에 186억원을 투자한 뒤 직접 정씨를 대상자로 추천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삼성이 최씨가 세운 페이퍼컴퍼니 비덱스포츠에 37억원을 송금한 날짜는 공교롭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가결된 지난해 7월 17일이다. 삼성은 이후 미르재단(지난해 10월)과 K스포츠재단(지난 1월)에 204억원을 출연했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날짜(7월 17일)가 겹친 게 우연의 일치냐”며 “국민은 사전에 기획된 비리의 커넥션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추궁했다. 도 의원은 “삼성전자가 37억원을 지급한 비덱스포츠는 컨설팅 이력이 전무한 회사인데 삼성전자가 이런 회사와 용역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며 “최순실 지원을 위한 우회 통로로 쓴 것이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지원을 결정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고 들었다”면서도 “여러 분이 연루돼 있고, 제가 직접 엮인 일이 아니라 잘못 말하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구체적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이 재차 “지난 2월에는 최씨의 존재를 알았느냐”고 추궁하자 이 부회장은 “그 언저리쯤이 아닌가…. 정확히 언제 알았는지는 정말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박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있다. 그 무렵 최씨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말이 된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부회장에게 보고도 없이 부정한 돈을 (비덱스포츠에) 지원한 임원을 왜 해고하지 않느냐”며 “이 부회장이 (지원 결정을) 보고받고 결재했기 때문에 해고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내가 그럴(해고) 결정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검찰 조사가 끝나면 저를 포함해 조직 내 누구라도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답했다. “문화·스포츠 지원에 대해선 일일이 보고받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씨를 언급하며 “황씨에게는 500만원을 내밀고, 정유라에게는 300억원을 내민 게 삼성”이라고 비판했다. 이 부회장은 이에 “아이 둘 가진 사람으로서 가슴 아프다”고 대답했다.

최씨의 압력으로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최씨와의 관계를 부인했다. 조 회장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느냐”는 새누리당 이만희 의원의 질문에 “사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이유는 묻지 않았다”고 답했다. “사퇴 전에 최씨와 삼청동에서 2번 만났다는 제보를 받았다”(정유섭 의원)는 주장에 대해서도 “최씨를 만난 적이 없다. 임명권자의 뜻으로 알고 물러났다”고 답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건 정부가 국가 이미지를 올린다고 해 국가에서 하는 줄 알았지 최순실이 하는 건지 몰랐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아들인 김동선 선수가 인천 아시아게임(2014년)에서 정유라씨와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땄는데 그때 최씨를 만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최씨의 얼굴도 모르고 누군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글=강태화·이지상 기자 thkang@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