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못 푼 ‘다리 이름 갈등’…이번엔 윈윈 해법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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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남 고흥군 우천리(왼쪽)와 여수시 적금도를 잇는 연륙교. 이달 말 준공을 앞두고도 다리 이름을 둘러싼 지역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사진 고흥군]

전남 고흥군 우천리(왼쪽)와 여수시 적금도를 잇는 연륙교. 이달 말 준공을 앞두고도 다리 이름을 둘러싼 지역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사진 고흥군]

전남 여수시 화정면의 섬마을인 적금도와 서쪽 육지인 고흥군 영남면 우천리 주민들은 이웃사촌 같은 관계다. 적금도 주민들이 수시로 배를 타고 육지인 우천리에서 물건을 사거나 인근 도시의 병원을 가는 등 왕래가 잦기 때문이다. 섬 주민 중 상을 당하면 여수 보다 가까운 고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2004년 두 지역을 잇는 연륙교 공사가 시작되면서 친분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다리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를 두고 10년이 넘도록 첨예한 갈등을 빚어왔다. 이런 가운데 다리 명칭을 최종 결정하는 회의가 열릴 예정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여수 적금도~고흥 우천리 연륙교
작명 둘러싸고 이웃사촌 간 마찰
국회의원 등 정치권 가세로 가열
완공 앞두고 9일 지명위서 확정

전남도는 6일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이 오는 9일 국가지명위원회를 열어 여수 적금도와 고흥 우천리를 잇는 연륙교 이름을 심의·의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가지명위는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이 다리 이름 등 각종 지명을 최종 결정하는 위원회다.

앞서 전남지명위원회는 지난달 말 이 다리 이름을 고흥 팔영산에서 따온 ‘팔영대교’로 결정해 국가지명위에 상정했다. 전남도는 “전문가들이 상징성과 역사성 등을 고려한 명칭”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적금도 주민들은 “연륙교 명칭은 종점부의 섬 지명을 따른다는 지명 결정의 원칙을 따르지 않은 것”이라며 반발했다. 또 “두 지역의 갈등을 유발한 결정”이라며 “전남도의 결정을 따를 수 없다”고 밝혔다.

전남지명위는 지난 5월에도 ‘팔영대교’란 이름을 국가지명위에 상정한 바 있다. 하지만 국가지명위는 여수시와 고흥군의 갈등을 이유로 이름을 확정하지 못하고 부결했다. 국가지명위 결정에 앞서 국회의원 등 지역 정치권까지 논란에 가세하기도 했다.

다리 명칭을 둘러싼 갈등은 공사가 시작된 2004년 불거졌다. 전남도에 따르면 당시 ‘다리 이름을 제안해달라’는 요청에 고흥군은 ‘팔영대교’란 명칭을 제출했지만 여수시는 응답하지 않았다.

이후 다리 건설 과정에서 잠잠했던 논란은 지난해 말부터 다시 시작됐다. 271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총 길이 2.98㎞, 폭 16.2m의 다리는 이달 말 완공 예정이다.

적금도 주민들은 전남지명위가 다리 명칭을 ‘팔영대교’로 정하자 국토지리정보원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적금대교’가 아니라면 두 지역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팔영적금대교·고려대교·여흥대교 등도 가능하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고흥 군민들도 ‘팔영대교’라는 다리 명칭을 부결한 국토지리정보원을 항의 방문해 논란을 가열시켰다.

다리 명칭이나 지명을 놓고 갈등을 빚는 것은 전국적으로 숱하게 벌어지는 현상이다. 대부분의 이름 논란은 경제적 효과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지명이 특정 지역과 연관될 경우 해당 지역 홍보나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지자체장들이 주민들의 눈치를 보며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것도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상대 지역에 지명을 빼앗길 경우 ‘무능한 시장·군수’로 낙인 찍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연륙교 명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철현 여수시장과 박병종 고흥군수 측을 만났지만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두 지역이 국가지명위의 결정을 존중하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갈등을 해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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