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수치 줄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8호 30면

“한국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가 너무 심해서, 조만간 망할거야!”


어느 늦은 퇴근 길, 택시기사가 불쑥 내뱉은 이 한 마디는 오랫동안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우리사회는 정녕 예전보다 불평등해졌을까?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발표한 다양한 통계를 검토한 결과, 그의 주장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경제는 매우 평등한 사회였다. 1960년부터 1997년까지 연 평균 8.9% 성장했기 때문이다. 성장률이 높아지면 세금이 잘 걷히며, 세금이 잘 걷히면 재정이 건전해질 뿐 아니라 각종 국책사업 등을 통해 손쉽게 실업자들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경제의 거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일단 내수시장이 개방되면서 경쟁의 강도가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고, 기업들이 모험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면서 1998~2015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4.1%로 떨어졌다. 2015년 성장률은 2.6%에 불과하다.


성장률의 하락은 경제의 활력 저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장률이 저하되는 순간, 한국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각종 문제점이 부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였고, 저물가·저금리 환경 속에 시작된 자산가격 상승은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킨 결정적 요인이 됐다. 이미 상당한 자산을 구축한 기성세대는 주가 및 부동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반면, 축적된 자산이 없었던 20~30대는 취업난 속에 발생한 주거비용 상승으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럼, 한국은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또 앞으로 사회갈등이 끝없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2008년을 고비로 오히려 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3년 한국의 중위소득 가구(전체 가구를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1부터 100까지 줄을 세웠을 때, 41~60번에 속하는 가구) 대비 상위 20% 가구(81~100번에 속하는 가구)의 소득배율은 2배였다. 다시 말해 중위소득 가구가 월 201만원을 벌어들일 때, 상위 20% 가구는 월 404만원을 벌었다. 이 격차가 2008년에는 2.1배까지 벌어졌다가 2015년에는 2배로 다시 2003년 수준으로 복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산을 기준으로 해도 불평등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10년 중위자산 가구 대비 상위 20% 가구의 자산배율은 6.2배였다. 즉 한국 중위가구의 자산은 2010년 1억 5209만원인데 비해 상위 20%가구 자산은 8억 8729만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2015년에는 재산자율이 5배로 줄어든다. 기초연금과 같은 복지지출 증가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제자리 걸음을 했던 결과로 짐작된다.


물론 이 정도의 성과에 만족할 수는 없다. 상당수 국민들은 불평등의 완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20대 실업난이 장기화되며 세대간 불평등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2016년 들어 다시 수도권 고가 아파트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산 불평등이 다시 심화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2017년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더 적극적인 취업대책과 복지재정의 확충을 이뤄야 할 것이다.


홍춘욱키움증권 수석 연구위원blog.naver.com/hong8706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