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어려워지자 내분격화|범양상선 박회장 투신 자살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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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투신자살한 범양상선 창업주 박건석 회장(59)은 업계는 물론 회사내에서조차 「신비의 인물」로 알려질 정도로 조용하게 큰 회사를 경영해온 사업가.
박회장은 작고한 부친 박미수씨(58년 사망)로부터 석유판매대리점인 미륭상사를 인수받은후 불과 20년 사이 국내 최대 해운회사인 범양상선을 비롯, 미륭상사·범양냉방·범양식품·범우운수·한호항공 등 계열기업을 거느려 재벌랭킹 27위에 올라서는 등 뛰어난 수완을 지녔다.
자살원인은 ▲회사내분 ▲외화도피 추적설 ▲건강·신변비관 ▲유조선사고 충격 ▲회사의 부채비관 등이 무성하게 나오고 있으나 유서내용으로 보아 회사내분이 직접적인 동기로 보인다.
◇성장과정=박회장은 어릴때부터 집안이 부유해 서울대상대, 미 시라큐스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전혀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
박회장의 부친은 일찍이 광산업으로 재산을 모았고, 일제시대 셸석유 국내대리점을 맡은 것이 인연이 되어 해방 후에도 줄곧 석유관계로 돈을 벌었다. 오래된 부자집안으로 한때 숭의학원을 맡기도 했으며 형(61)은 운수업을 하고 있고, 동생 박동선씨(52)는 국내에서 사업실패로 미국에 도피중이다.
박회장은 고급 사교술과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동생 동선씨와 함께 미국의 정계·재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의 거물들과 깊은 교류를 갖기도 했다.
◇경영내분=박회장은 가족과 임직원에게 각각 1통씩의 유서를 남겼다. 특히 임직원에게 남긴 유서는 경영권을 둘러싼 특정인을 원망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박회장이 범양상선의 모체인 범양전용선을 세운 것은 66년.
당시 정계의 실력자 모씨의 뒷받침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범양전용선은 유공의 석유수송권을 독점으로 맡아 해운재벌의 문을 열게됐다.
당시 유공에 합작 파트너로 참여, 원유공급과 수송을 독점하던 걸프가 석유수송을 범양에 맡긴 것.
범양은 걸프로부터 차관을 받아 배를 사고 그 배를 다시 걸프에 용선하는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었다.
당시에는 이를 두고 모씨의 지원에다 박회장 형제의 뛰어난 사교술이 작용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70년대 중반 해운호황으로 일약 재벌규모로 성장했지만 80년 들어 불어닥친 불경기로 빚더미로 변했고 정부의 해운업계 통폐합조치로 84년 삼미해운·세방해운 등을 합쳐 범양상선으로 이름을 고쳤다.
빚은 1조2백50억원으로 불어났으나 지난 2월 정부의 금융지원으로 95년부터 흑자를 내도록 장기계획을 추진해 왔던 것.
이 과정에서 설립자인 박회장과 전문 경영인인 사장 한모씨(52)간에 회사경영 방침을 둘러싸고 내분이 일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회장은 지난해 미국에 있던 사위(38)를 상무로 앉혀 한때 경영실무를 맡겼으나 회사 내부의 반발이 투서를 통해 표면화돼 외부로 알력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회사내부에서는 최근 박회장이 경영부실의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손을 떼도록 연판장을 돌리는 등 실력행사도 서슴지 않았었다는 것.
특히 자살하기 전날인 18일 박회장을 반대하는 실력자 4명이 중요한 회의를 가졌다는 소문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박회장이 유서에서 한사장과 부사장·전무·상무 등의 이름을 적시하고 원망한 것을 보면 결국 자살의 직접적 원인은 경영권을 둘러싼 회사내분에 따른 충격으로 보인다.
◇유조선 사고=3월2일 범양상선 소속 유조선이 옹진 앞바다에서 암초에 부딪쳐 벙커C유 86t이 옹진·화성·당진·서산군의 서해안 일대를 오염시켰다.
이 사고로 어민들이 모두 2백26억5천여만원의 피해보상을 요구해 당진·인천지역은 모두 6억여원에 합의됐고 옹진·화성지역은 합의가 진행 중. 그러나 피해보상은 전액 보험사인 영국의 로이드사가 부담하므로 범양측으로선 도의적 책임만 있어 박회장의 자살이유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주변 이야기다.
◇외화도피설=회사 내분을 둘러싸고 내부의 제보로 박회장이 관계당국에 의해 추적조사를 받아 자살 이틀전인 17일 서울 성북동 자택을 수색당해 거액의 외화도피 증거가 적발되었다는 설이 나돌고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박회창주변=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당뇨증세가 있어 건강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신변을 비관할 정도는 아니었고 주량은 맥주 1∼2잔.
1조원의 빚으로 연간 1천억원쯤의 이자를 부담해야 했지만 은행에도 한번 얼굴을 비치지 않을 정도로 뒷전에서 일했고, 잘생긴 외모에다 사내 아랫사람에게도 반드시 존대말을 써서 부하들에게는 「신사」로 통했다. <도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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