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애니] 고양이 왕자를 구해줬어요, 그런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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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은혜를 갚는다고? 애묘(愛猫)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이는 영 어색한 얘기다. 이번주 개봉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은 바로 거기에 착안했다. 평범한 소녀 '하루'가 우연히 고양이 나라 왕자의 목숨을 구해주는데, 고양이들이 그 은혜를 갚는 방식이 순 제멋대로라서 한바탕 소동과 모험이 이어지는 얘기다.

'고양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명가(名家)인 스튜디오 지브리가 지난해 한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어 내놓은 최신작이다. 지브리의 1995년작 '귀를 기울이면'(곤도 요시후미 감독)에 장식용 인형으로 나왔던 고양이 남작이 이번에는 하루를 도와주는 중요한 인물로 부활했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대신 이번이 첫 장편인 신예 모리타 히로유키(39)가 감독을 맡았다. 그런 덕분인지 이전의 지브리 작품과는 색채가 전반적으로 다르다. 원색의 강렬한 대비 대신 가볍고 섬세한 느낌이다.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일본적 소재와 역동적인 화면구성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대신 고양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사건의 연속이 내내 관객을 사로잡는다.

e-메일로 인터뷰한 히로유키 감독은 '고양이…'의 세계가 서양풍이라는 기자의 지적에 절반만 동의했다. 하루를 도와주는 남작은 영국신사 차림이고, 고양이 왕자와 친위대는 프랑스 기병대를 본떴지만 고양이 나라의 묘사에는 일본에 흔한 강아지풀.이스터섬의 석상.아프리카 원주민을 닮은 성 등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있다는 반론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네 오작교를 연상시키는 까마귀 행렬처럼 일본의 민화에서 힌트를 얻은 묘사도 곳곳에 등장한다.

감독은 이를 "화혼양재(和魂洋才.일본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이 융합한다는 뜻)의 세계"라고 요약했다. 스스로 화혼양재 정신에 젖었다는 감독은 일본 전통 문화를 잘 모르는 '요즘 젊은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하루의 눈높이로 풀어냈다고 설명한다. 주인공 하루 역시 '센과 치히로…'같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 나온 의지력 강한 소녀들과는 다르다.

감독의 말을 빌리면 "얼핏 보면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 여자아이"면서 "멋진 꿈도, 특별한 재능도 없다". 대신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신사인 고양이 남작이 하루를 돕게 되는데, 그 이유 역시 뚜렷하지는 않다. 감독은 "하루 같은 아이에게도 남작 같은 영웅이 나타난다는 낙천적인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고양이…'는 지난해 일본 개봉에서 '센과 치히로…'의 뒤를 이어 일본 역대 2위의 관객동원 성적을 냈다.

"일본은 불경기이고 창조력이 의문시되는 시대입니다. 직장은 능력주의고,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뛰어나고 특별해야 합니다. 즉 보통으로 살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관객이 하루의 평범함에 안도하는 게 아닐까요. '보통이라는 게 뭐가 나빠'라고 말이죠."

흥행 성공에 대한 감독 자신의 분석이다. 참고로 감독은 "일본인은 '개파'와 '고양이파'로 나뉜다"면서 스스로를 '개파'로 분류했다. 그래서 "고양이 남작으로 작품을 만들라는 주문에 솔직히 곤란했다"고 털어놓았다.

대신 "애니메이터들이 고양이를 아주 좋아한 덕택에 그림은 사실적"이라고 했다. 다만 이 작품이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의 향연만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길.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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