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결혼하고 애기도 갖고 그래야지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박정수]

필자는 기혼인 젊은 여자사람이 수술을 받게 되면 "애기는 몇 마리고 , 몇 살이고?" 하고 묻는 버릇이 있다.

수술대에 옮겨 누울 때 눈자위가 벌겋게 되며 눈물을 보이는 수가 많아 짠해진 마음으로 묻곤 한다.

"와 우노? 수술 잘 될텐데…"

"그게 아니고요, 아기가 보고 싶어서요"

아~~, 이게 엄마 마음이구나, 그렇지, 남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

이런 젊은 엄마 환자를 보면 어떻게해서라도 좀 더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줘야지" 결심하고 결심한다.

16호수술실, 30대 후반 미인형의 젊은 여자 사람 환자가 수술대 위로 옮겨 눕는다.

"애기는 몇살이고?"

"저 애기 없는데요, 미혼이거든요"

"어? 왜 결혼 안했노?"

"글쎄요, 남자가 없어서요"

"내 고쳐 줄꺼니까 결혼하고 애기낳고 잘 살아야지"

"네, 그렇게 돼야죠"

"그런데 의무기록에는 갑상선혹이 발견된 것은 지난 1월이었는데?"

"별로 중요하게 생각을 못해서요"

"하~, 또 갑싱선암은 진단도 치료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믿었구나…"

"네,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해서요"

"지금 굉장히 많이 퍼져 있거든요. 갑상선 본체의 어미 암 보다 옆목으로 퍼진 집나간 아들 암이 훨씬 더 크고 심하게 퍼져 있어요. 지난 1월에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했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텐데….

오늘 수술이 좀 커질 것 같지만 최대한 잘 해줄께요. 최소 침습기법으로요"
 "네, 교수님, 예쁘게 잘 해주세요"

수술 조수로 들어온 닥터 김과 얘기를 나눈다.

"여기 초음파 영상 좀 봐라. 갑상선에는 여러개의 암덩어리가 있는데 왼쪽 날개에 있는 것이 제일 크고 오른쪽에 있는 것들은 왼쪽 거 보다는 좀 작지?"

"네, 그렇군요, 왼쪽 제일 큰 것은 1.77㎝이고, 오른쪽에도 3개가 있는데 0.75 ㎝, 0.55㎝, 0.53㎝로 측정돼 있는데요"

"옆목 전이림프절은 어때?"

"아이고, 레벨 4 것이 2.4㎝로 제일 크고, 레벨3 에도 이보다는 작지만 여러개가 있는데요, 레벨 2는 괜찮은 것 같고요"

"레벨4에 있는 저놈 떼어낼 때 조심해야 될거야, 흉관(thoracic duct)하고 붙어 있어 수술후에 유미루(chyle fistula)가 생길 수 있거든"

수술은 왼쪽 목 아래 주름을 따라 중앙 경부 피부를 피해 옆목에 약 6㎝절개선을 넣고 내경정맥과 쇄골하정맥이 만나는 레벨 4의 맨 아랫쪽에 박혀있는 전이림프절부터 제거하고, 레벨 5의 일부,레벨3, 레벨2순으로 옆목림프절 청소술을 시행한다.

흉관과 붙어 있는 레벨4 전이림프절을 떼어낼 때 스트레스지수가 좀 올라갔지만 별일 없이 잘 수행된다. 전기관 림프절, 좌우 기도-식도 협곡에 있는 전이림프절들도 잘 제거된다.

이렇게 중앙경부림프절 전이가 심할 때는 수술후 부갑상선기능저하증 - 저칼슘혈증으로 손발이 저리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수술 중 닥터 김이 말한다. "교수님, 지난 1월에 수술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퍼졌을 텐데요"

"누가 아니래, 갑상선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그 이상한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지"

마취회복실의 환자상태는 양호하다. 목소리도 좋고 손발 저림도 없다. 유미루도 안 보인다.

"수술 잘 됐어요, 별일 없이 잘 회복 될 것입니다"

"저 부갑상선도 다 살리고 그려셨어요?"

"물론이져, 다 살려줬지요, 근데 다 살려 줬는데도 가끔 저리다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요. 수술은 예쁘게 한다고 최소침습기법으로 했고, 이제 진짜 결혼하고 애기도 갖고 그래야지요"

조금전 수술이 끝난 환자답지 않게 웃는 표정이 되며 엄지척을 해준다.

흐흐… 엄지척, 기분 좋네…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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