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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국정교과서 서로 내용 다른 오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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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현직 중·고교에서 역사를 담당하는 교사들이 중앙일보 취재팀과 함께 교육부의 국정 역사교과서(올바른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검토한 결과 “학교 수업에 활용하려면 내용과 구성에 전반적인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29일 평가했다.

현장 역사 교사들이 검토해 보니
글 길고 주관적 표현도 눈에 띄어
대통령 중 박정희 8.5쪽 가장 길어

한국교총에 소속된 교사들은 교과서 체제나 구성, 내용과 별도로 교과서가 수업에서 제대로 활용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했다. 교사들은 가장 큰 문제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성과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새 교육과정은 교사의 강의 위주가 아닌 학생 중심의 참여형 수업을 목표로 한다. 이건홍 백영고 수석교사는 “검토본의 학생 활동 문제들은 교과서만으로 학생이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교과서 본문과 활동 문제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학생들이 책만 보고는 이해가 힘들겠다는 것이다.

학생 활동 문제가 추론이 필요없는 단답식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학교 역사2(86~87쪽)의 ‘제국주의의 출현 이후 세계는 어떻게 변하였을까’ 단원에는 ‘1차 세계대전의 전개과정을 정리해보자’는 문제가 실렸다. 차미숙 부곡중앙고 수석교사는 “단원 전체를 아우르는 생각할 거리가 아니라 단순 정보를 정리하는 데 그친다”고 말했다.

본문의 양이 지나치게 길어진 것도 지적됐다. 최효성 유신고 교사는 “기존 검정 교과서보다 전체 분량은 100쪽 정도 줄었지만, 2단 편집으로 인해 글은 오히려 늘어났고 지엽적인 내용까지 세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공부하기 힘든 교재가 됐다”고 했다.

28일 공개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에 실린 ‘고조선의 문화 범위’ 지도에서 중학교 교과서는 한반도 남쪽 지역에도 세형동검이 출토됐다고 표시(왼쪽 원 안)했으나 고교 교과서(오른쪽)는 표시하지 않았다.

28일 공개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에 실린 ‘고조선의 문화 범위’ 지도에서 중학교 교과서는 한반도 남쪽 지역에도 세형동검이 출토됐다고 표시(왼쪽 원 안)했으나 고교 교과서(오른쪽)는 표시하지 않았다.

중학교 교과서와 고교 교과서가 일치하지 않는 오류도 발견됐다. 국정교과서는 기존 검정 교과서와 달리 고조선의 문화 범위를 알 수 있는 지표로 ‘세형동검의 출토 범위’를 추가했다. 중학교 교과서의 지도에 세형동검의 출토 범위가 한반도 전역으로 표기된 반면, 고교 교과서에는 한반도 남쪽 지역이 빠졌다. 차 교사는 “중·고교 교과서 집필진이 각기 다른 자료를 참고하고 추후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것 같다”고 추정했다.

지나치게 크기가 작거나 단색으로 인쇄돼 학습용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사진과 삽화도 다수 눈에 띄었다. 중학교 역사1(44쪽)에 실린 ‘죽림칠현’을 표현한 단색 삽화에 대해 전정희 부천상동중 교사는 “검정 교과서에는 총천연색인 그림이 실려 학생의 기억을 돕고 호기심을 유발했지만 국정교과서에 쓰인 동일한 그림은 단조롭고 엉성하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은 애초 교육부의 약속과 달리 현대사 분량이 늘어난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검정 교과서는 전근대사와 근현대사가 6대 4의 비율이었던 데 비해 국정교과서는 5.5대 4.5로 근현대사 비중이 늘었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설명 중 박정희 정부에 대한 설명이 8.5쪽으로 가장 긴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설명은 2쪽, 노태우 정권 이후부터는 모두 1쪽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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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홍 교사는 “일부는 장황하고 일부는 지나치게 축약돼 있는 등 집필진과 편집자가 검토해 균형 있게 조율하지 못했다”며 “교육부는 질로 평가받겠다고 했지만 약속에 부합한 교과서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교 교사는 “교과서 자체의 완성도는 낮지만, 고등학교는 국가 시험인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채택하는 곳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형수·백민경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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