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컬러예술기행 제자 천경자|「반·고흐」의 불타는 예술혼에 압도|에너지의 덩어리 「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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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비린내 나는 지하철
뉴욕은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에너지의 덩어리를 실감케 했다.
온갖 모양의 빌딩과 사람들, 쏟아지는 물품들, 게다가 호모들과 쓰레기까지 많아 딛고 설 곳조차 없이 숨가빴다. 그런데도 인종이 많으니 서로 혼합이 되어 되레 다른 곳에 비하면 무색무취였다. 다만 지하철부근의 악취와 거리마다 노점에서 빵 태우는 냄새를 제외하고 말이다.
회색구름이 축 처진 어느 날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갔었다. 순수한 화학도들에겐 신같은 존재인 「반·고흐」전이 열리고 있었지만 입장권을 사지 못하고 예매권 두 장을 구해 되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그냥 돌아와 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기왕 여기까지 나온 것이니 다른 곳도 좀 들여다보자고 장녀를 끌고 돌다보니 어느새 거리는 깜깜해지고 비가 억수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택시도 버스도 보이지 않고 우산도 없이 몇블록을 걸어 지하철을 타야했다.
지하철홈은 비에 젖어 비린내나는 인파의 홍수였다.
어쩌다 전차가 들이닥쳐도 인파에 밀려 그 자리에만 맴돌고 있는데 전차를 탄다해도 내리고나서 또 서너 블록을 걸어야 아파트까지 가게되니 심난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딸아이나 나나 『폭풍의 언덕』(주·영국여류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의 「캐더린」성격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인지 피차 정이 뜨겁다보니 변덕스러움도 없지 않았다. 이를테면 장녀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미역국을 끓이려고 하는데 필요없다고 막으니 내가 무안했던 일 따위. 이럴때 을혜어미(차녀)라도 함께 있으면 중화제 역할을 해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문득 차녀가 보고 싶어졌다.
좌절된 미국진출
하루는 나의 버릇대로 스케치북을 끼고나와 가까운 버스정류장의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사람구경을 하며 애꿎은 담배만을 피워대는데 정류장엔 재떨이가 없었다. 한쪽에선 오만가지 범죄가 난무하는 마당에 금연만 철저한 곳이 뉴욕의 현실이었다.
20년전 처음으로 뉴욕에 왔을때 공원마다 줄줄이 꽃뭉치가 피어있어 페투니아가 피었나…가보니 그것은 깨끗한 홀 할머니들의 머리에 얹힌 모자였다. 그 당시 시카고에 화랑을 갖고 있다는 괴기영화배우 「빈센트·프라이즈」 를 무척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언어불통으로 직접 부딪쳐 볼 수도 없고 끈이 닿지않아 나의 화가로서의 미국진출은 좌절이 되어 버렸다.
「반·고흐」전은 한 작가의 귀기맴도는 죽음 직전의 마지막 작품세계에 대한 재평가를 위한 유니크한 기회를 부여해 주었다.
그 전시회는 나에게 하나의 구도를 열어주었고 깊은 감동으로 가슴을 설레게 했다.
「고흐」가 아이리스를 떠나 1890년 파리의 북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자살하기 직전까지의 작품들은 숭고한 종교였다. 그 중에도 『별이 뜬 밤』 『아이리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미칠 것같이 좋았었다. <어느 책에선가 「고흐」가 만년에 남긴 작품의 색채를 분석한 결과 녹내장을 앓았다는 의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허드슨강 스케치
브로드웨이의 극장가에서는 4년전에 보았던 히트 뮤지컬 『42번가』 『캐츠』 등이 아직도 공연되고있고 록펠러센터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휘황찬란했지만 그림이 되진 않았다. 사람이 많이 몰린 스케이트장 건너편 어느 영화관에선 디즈니만화 『레디와 트럼프』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오래전 천재 「월트·디즈니」는 TV에 나와 30년 더 살면서 일하고 싶다고 말해놓고 다음해에 세상을 떠난 기억이 되살아난다.
미역국사건이나 겨울비따위같은 모녀사이를 가로막는 사소한 일들이 게임처럼 발생해 추웠다 더웠다 하는 변덕스러운 뉴욕의 날씨 같았다.
어느날 나는 또 가출을 했다. 무작정 허드슨강의 역풍을 맞으며 강변을 걷기 시작했는데 뒤에서 검은 코트가 따라오는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니 딸이었다.
딸은 당황한 얼굴을 하며 총총걸음으로 나를 따라왔다.
나의 감성은 갑자기 격해지고 그대로 미친 사람처럼 줄달음질쳐 강에 빠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조금 남은 이성때문인가-팔에 꽉 낀 스케치북을 펴 강위에 뜬 구름을 그리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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