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현장 클릭] 100분 토론보다 뜨거운 지구과학 토론 … “직접 논문도 찾아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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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고 학생 참여형 과학 수업
지난 22일 서울 하나고에서 지구과학Ⅰ수업이 진행 중이다. 학생들은 ‘사막화 현상 방지를 위한 유목민의 강제 이주’를 주제로 찬반 토론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 22일 서울 하나고에서 지구과학Ⅰ수업이 진행 중이다. 학생들은 ‘사막화 현상 방지를 위한 유목민의 강제 이주’를 주제로 찬반 토론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구과학Ⅰ’ 과목은 학생들 사이에서 ‘재미없고 딱딱한 과목’으로 취급된다. 다양한 자연현상을 다루다보니 익혀야 할 개념은 많고 수업은 실험보다는 강의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하나고에선 다르다. 이 학교 이효근 교사의 지구과학Ⅰ 수업은 ‘100분 토론’을 방불케 한다. 수업이 매번 토론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두 학생이 1대 1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다툰다. 이 교사는 사회자가 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방청객이 돼 질문을 던진다. 소단원 ‘지구 환경 변화’ 부분 중 ‘사막화’에 대해 배울 차례였던 지난 22일 오전 수업 역시 그랬다. 지구과학Ⅰ을 선택한 1학년 학생 23명은 A101강의실로 모여 ‘사막화 현상 방지를 위한 유목민의 강제 이주’에 관한 토론을 펼쳤다.

입론→질문→최종발언, 토론법 배우고
찬반 토론 참여 위해 영문 사이트도 살펴
학생들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든 느낌”

“사회자 이효근입니다. 찬성 측 토론자 김민지 양과, 반대 측 토론자 이동진 군의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찬성 측 토론자 입론해주십시오.” 이 교사가 운을 떼자 학생들의 시선이 교실 앞 두 토론자에게 집중됐다. 김양은 “인간의 과도한 경작과 방목 등이 사막화를 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사람의 자취가 사라지는 순간 지구 생태계는 즉각 호전되기 시작한다’는 보전생물학자 존 오록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며 2분 간 찬성 주장을 이어갔다. 나머지 학생들은 김양의 주장을 받아 메모했다. 김양의 주장이 끝나자 이 교사가 질문했다. “유목민 이주를 위해선 경제적 부담이 클 듯한데, 예상 비용에 대한 자료가 있습니까?” 김 양은 “그 부분은 구체적 자료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사막화가 진행될 경우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더 큰 것은 자명하다”고 답했다.

반대 측 주장이 시작됐다. 이군은 “중국 남방도시보에 따르면 간수성 중심의 사막화로 중국 동부 도시로 이주한 유목민들이 지역·민족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며 “강제 이주 없이도 면적당 목축 규모를 제한하는 등 방법으로 사막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엔 방청객 자리에 있던 학생의 질문이 이어졌다. 김경태 군이 “찬성 측 토론자는 유목민들의 거주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오히려 이들의 이주가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동의하느냐”고 묻자 이군은 “이주를 희망하는 경우는 일부 사례에 불과하며 여러 사례에서 대부분이 전통생활 방식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양 측이 3분 간의 결론 발언까지 끝마치자 이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생 모두 책상에 엎드린 뒤 손을 들어 승패를 갈랐다.

20~30분 간의 토론이 끝난 뒤에는 교과서 수업이 진행됐다. 토론 과정에서 정리된 사막화의 정의와 교과서 속 사막화 정의를 비교했다. 또 교과서 사례와 토론자들이 알아온 사례들을 짚어보며 사막화의 원인과 실제 현상 등을 폭넓게 다뤘다. 반대 측 토론자인 이동진 군은 “2주간 사막화와 관련된 논문 6편을 살펴봤고, 중국 정부의 사막화 방지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영문 사이트도 살펴 봤다. 교과서보다 한 발 더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일주일에 두차례 배정된 지구과학Ⅰ 수업을 항상 토론으로 시작한다. 토론수업을 시작한 건 2010년부터다. 이 교사는 “어느날 보니 우수한 아이들 앉혀놓고 나 혼자서 떠들고 있더라. 함께 공부해보자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교사의 토론은 여타 토론식 수업과 다르다. 조별로 찬반을 나눠 단체로 이뤄지는 대신 모든 학생이 돌아가며 매 시간 찬성이나 반대를 전담한다. 이 교사는 “동료들과 함께 하면 ‘자유 방임’이 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준비하고 배우는 수준이 동료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토론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학기 초 ‘입론→교차질문→최종 발언’으로 이어지는 토론 형식과 각 과정에서 담겨야 할 요소 등 토론법에 대해 알려준다. 그런 후 두 번째까지의 토론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잘한 점과 못한 점을 설명한다. 토론 중에는 학생을 ‘토론자’나 ‘방청객’이라고 지칭하며 진지하게 임한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입론과 최종 발언은 준비해온 자료를 토대로 잘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부족한 교차 질문은 교사가 대신해 토론을 원활하게 이어간다”고 말했다. 토론 주제 결정도 중요하다. ▶학습해야 할 부분과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지 ▶찬성과 반대가 비등한 문제인지 등을 놓고 주제를 정한다. 대기오염 부분에선 ‘우리나라 실내 오염 규제가 적절한가’, 수질오염에선 ‘한강의 하수처리장을 더 증설해야 하는가’를 놓고 토론하는 식이다.

이 교사는 교사생활을 하는 동안 토론식 수업을 계속 진행할 생각이다. 이 교사는 “옛날에는 지식을 배우는 게 무기였지만 미래에는 널린 게 정보”라며 “정보를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생각을 할 줄 아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김민지 양은 “교과서 속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 다양한 사례와 자료 조사를 통해 실제 현실 속 이야기를 연결지어보면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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