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과학Ⅰ’ 과목은 학생들 사이에서 ‘재미없고 딱딱한 과목’으로 취급된다. 다양한 자연현상을 다루다보니 익혀야 할 개념은 많고 수업은 실험보다는 강의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하나고에선 다르다. 이 학교 이효근 교사의 지구과학Ⅰ 수업은 ‘100분 토론’을 방불케 한다. 수업이 매번 토론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두 학생이 1대 1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다툰다. 이 교사는 사회자가 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방청객이 돼 질문을 던진다. 소단원 ‘지구 환경 변화’ 부분 중 ‘사막화’에 대해 배울 차례였던 지난 22일 오전 수업 역시 그랬다. 지구과학Ⅰ을 선택한 1학년 학생 23명은 A101강의실로 모여 ‘사막화 현상 방지를 위한 유목민의 강제 이주’에 관한 토론을 펼쳤다.
입론→질문→최종발언, 토론법 배우고
찬반 토론 참여 위해 영문 사이트도 살펴
학생들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든 느낌”
“사회자 이효근입니다. 찬성 측 토론자 김민지 양과, 반대 측 토론자 이동진 군의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찬성 측 토론자 입론해주십시오.” 이 교사가 운을 떼자 학생들의 시선이 교실 앞 두 토론자에게 집중됐다. 김양은 “인간의 과도한 경작과 방목 등이 사막화를 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사람의 자취가 사라지는 순간 지구 생태계는 즉각 호전되기 시작한다’는 보전생물학자 존 오록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며 2분 간 찬성 주장을 이어갔다. 나머지 학생들은 김양의 주장을 받아 메모했다. 김양의 주장이 끝나자 이 교사가 질문했다. “유목민 이주를 위해선 경제적 부담이 클 듯한데, 예상 비용에 대한 자료가 있습니까?” 김 양은 “그 부분은 구체적 자료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사막화가 진행될 경우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더 큰 것은 자명하다”고 답했다.
반대 측 주장이 시작됐다. 이군은 “중국 남방도시보에 따르면 간수성 중심의 사막화로 중국 동부 도시로 이주한 유목민들이 지역·민족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며 “강제 이주 없이도 면적당 목축 규모를 제한하는 등 방법으로 사막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엔 방청객 자리에 있던 학생의 질문이 이어졌다. 김경태 군이 “찬성 측 토론자는 유목민들의 거주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오히려 이들의 이주가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동의하느냐”고 묻자 이군은 “이주를 희망하는 경우는 일부 사례에 불과하며 여러 사례에서 대부분이 전통생활 방식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양 측이 3분 간의 결론 발언까지 끝마치자 이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생 모두 책상에 엎드린 뒤 손을 들어 승패를 갈랐다.
20~30분 간의 토론이 끝난 뒤에는 교과서 수업이 진행됐다. 토론 과정에서 정리된 사막화의 정의와 교과서 속 사막화 정의를 비교했다. 또 교과서 사례와 토론자들이 알아온 사례들을 짚어보며 사막화의 원인과 실제 현상 등을 폭넓게 다뤘다. 반대 측 토론자인 이동진 군은 “2주간 사막화와 관련된 논문 6편을 살펴봤고, 중국 정부의 사막화 방지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영문 사이트도 살펴 봤다. 교과서보다 한 발 더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일주일에 두차례 배정된 지구과학Ⅰ 수업을 항상 토론으로 시작한다. 토론수업을 시작한 건 2010년부터다. 이 교사는 “어느날 보니 우수한 아이들 앉혀놓고 나 혼자서 떠들고 있더라. 함께 공부해보자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교사의 토론은 여타 토론식 수업과 다르다. 조별로 찬반을 나눠 단체로 이뤄지는 대신 모든 학생이 돌아가며 매 시간 찬성이나 반대를 전담한다. 이 교사는 “동료들과 함께 하면 ‘자유 방임’이 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준비하고 배우는 수준이 동료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토론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학기 초 ‘입론→교차질문→최종 발언’으로 이어지는 토론 형식과 각 과정에서 담겨야 할 요소 등 토론법에 대해 알려준다. 그런 후 두 번째까지의 토론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잘한 점과 못한 점을 설명한다. 토론 중에는 학생을 ‘토론자’나 ‘방청객’이라고 지칭하며 진지하게 임한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입론과 최종 발언은 준비해온 자료를 토대로 잘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부족한 교차 질문은 교사가 대신해 토론을 원활하게 이어간다”고 말했다. 토론 주제 결정도 중요하다. ▶학습해야 할 부분과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지 ▶찬성과 반대가 비등한 문제인지 등을 놓고 주제를 정한다. 대기오염 부분에선 ‘우리나라 실내 오염 규제가 적절한가’, 수질오염에선 ‘한강의 하수처리장을 더 증설해야 하는가’를 놓고 토론하는 식이다.
이 교사는 교사생활을 하는 동안 토론식 수업을 계속 진행할 생각이다. 이 교사는 “옛날에는 지식을 배우는 게 무기였지만 미래에는 널린 게 정보”라며 “정보를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생각을 할 줄 아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김민지 양은 “교과서 속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 다양한 사례와 자료 조사를 통해 실제 현실 속 이야기를 연결지어보면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