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에너지 자립률 7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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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명의 이기인 전기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지 올해로 1백년이 된다.
한전은 10일 전기의 날을 맞아 『한국전기 1백 년 사』발간, 종합 전력 홍보관 건립추진 등 갖가지 기념행사를 갖는다.
○…한전은 2000년대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장기발전 계획을 수립, 야심찬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에너토피아 (Enertopia)건설로 불리는 이 사업은 2001년에 국내 에너지 자립도를 7O%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에너토피아 설을 위해 에너지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고 공해가 없으며 경제성이 높은 원자력을 집중적으로 활용할 계획.
우선 1단계로 원자력 11,12호기가 가동되는 96년에 원자력 비중을 총 발전 설비의 33·3%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모두 3조3천 여 억 원이 투입되는 원자력 11,12호기 건설과 함께 국산화율을 70%이상으로 끌어올리고 90%이상의 기술자립도를 이룩한다는 청사진.
한전은 2단계로 축적된 국내기술을 바탕으로 2000년까지 고속증식로를 개발, 완벽한 원자력 시대를 연다는 계획이다.
○…1887년3월초 건청궁(현재 하복궁) 뒤편 향원정 연못가에 1백W아크 등 2개가 켜짐으로써 사람들은 처음으로 전기를 보게됐다.
호롱불에서만 생활하던 사람들은 대낮처럼 밝은 전기등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하지만 발전기의 운전 미숙으로 고장과 정전이 잦아 꺼졌다 켜졌다 하는 일이 많았고 엄청난 수리비 때문에 한동안은 「건달불」로 불렸으며 발전기의 증기 기관에서 나온 더운물이 연못에 흘러들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자 이를 망국의 징조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는 것.
○…전기불이 민간에 최초로 혜택을 준 것은 1900년4월10일. 대한제국으로부터 최초의 전기회사로 허가를 받은 한성전기가 밤늦게까지 전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종로에 가로등 3개를 설치한 것이다. 이 최초의 민간점증을 기리기 위해 1966년부터 이날을 「전기의 날」로 제정해 기념하고있다.
전등의 보급에 앞서 전차가 등장한 것은 고종황제가 홍릉에 있는 민비의 무덤을 자주 찾아가자 미국인 업자가 이권을 따기 위해 1898년12월 서대문∼홍릉 이에 설치한 것.
70년 동안 수도서울의 대중교통수단으로 각광을 받았던 전차는 68년11월29일 도심교통의 장애물이 된다는 이유로 서울거리에서 사라졌다. 일반가정에 영업용 전기불이 켜지기 시작한 것은 한성전기가 경운궁(현 덕수궁)에 전등26개를 단 1901년6월부터. 8년 뒤엔 서울장안 (4대문안) 5만 가구에 고작 4백90가구가 전등을 달았는데 이는 당시 전기료가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이다. 50측관 한등이 한 달에 6원 (당시 쌀 한가마 9원·쇠고기 한근 40전) 이었으니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못 냈다.
○…61년 조선전업과 경성 및 남선전기회사를 통합, 새로 발족된 한전은 다각적인 전원개발사업으로 전력수급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데 특히 66년 부산화력1호기(6만6천㎾)가동으로 전력 부족난을 크게 덜었고 78년4월 경남고리 원자력발전1호기를 준공함으로써 원전시대를 열었다.
한전이 발족할 당시 국내발전설비용량은 36만7천2백54㎾로 수요 43만5천여㎾에 그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86년 말 발전시설용량은 1천8백5만8천㎾로 그 동안 무려 50배 이상이 증가했다. 이것은 최대수요인 1천2백 여만㎾를 감당하고도 30% 이상이 남아돌아 오히려 북한에 송전을 제의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같은 전력산업의 급속한 신장과 함께 한전도 크게 성장, 년도 매출액은 무려 3조6천4백91억7천 만원을 기록했다. <임병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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