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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골 다큐’ 아시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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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호 29면

프리랜서 PD로 지상파 TV용 방송영상을 오래 제작해온 이창준(46) 감독은 4년 전 큰 결심을 했다. 저작권이 방송사 아닌 감독에게 귀속되고 잘만 하면 해외에 수출할 수도 있는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시청률에 일희일비하며 공장처럼 프로그램을 찍어내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도 한몫 했다. 평소 관심 갖고 있던 ‘노숙인’과 ‘공동체’라는 두 주제를 작품에 녹여내기로 방향을 잡았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현장은 서울에 몇 남지 않은 쪽방촌 중 하나인 영등포의 속칭 ‘안동네’. 올해 9월 개봉돼 호평을 받은 다큐멘터리 ‘왕초와 용가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안그래도 없는 살림에 빚부터 냈다. 방송용 카메라 못지않은 동영상이 나오는 니콘 D800 카메라와 비싼 렌즈들, 오디오 믹서, 마이크 등을 구입하는 데 1500만원이 들었다. 2012년 5월 2일 영등포 안동네에 처음 발을 들였다. 주민들의 반응은 당연히 차가웠다. “쥐도 새도 모르게 가는 수가 있어”라는 으름장도 여러 차례 당했다. 굴하지 않고 매일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동네를 찾아가 어슬렁거리자 조금씩 안면이 트이기 시작했다. 두 달만에 안동네에서 왕초로 통하던 상현씨로부터 촬영 ‘허가’를 받았다. 내친 김에 쪽방 하나를 얻어 아예 주민이 되었다.


생업을 포기하고 장기간 작품을 찍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감독에게는 아내와 세 자녀가 있다. 염치 없지만 가정은 당분간 부인에게 맡기고 혼자 쪽방 생활을 했으나 제작비는 또다른 부담이었다. 투자를 받으려고 피칭(pitching·작품의 컨셉트, 제작계획 등을 투자자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노숙인은 이미 식상한 주제”라는 힐난을 들었다. 석달 만에 쪽방에서 철수했다. 미련을 다독이며 방송사 외주제작 일에 다시 매달렸다. 그러나 꿈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7개월 후 다시 안동네를 찾았다. 독하게 마음먹고 주민들과 동화되고자 했다. 아내가 “그 동네 사람이 다 된 것 같다”며 걱정할 정도가 됐다. 촬영 중이던 작년 여름엔 간경화에 시달리며 “죽어 애완견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쪽방 주민 정선씨(별명 ‘용가리’)가 43세로 세상을 등졌다. 많이 울었다.


나는 ‘왕초와 용가리’를 이달 11~13일 열린 춘천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관람했다. 어린 린포체(환생한 고승)가 전생에 수도하던 절을 찾아가는 고된 여정을 그린 ‘앙뚜’, 몽골 유목민의 삶과 세대 갈등에 주목한 ‘슬픈 늑대’, 농사꾼의 길을 찾아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젊은이들의 좌충우돌을 담은 ‘파밍 보이즈’, 해녀 다큐멘터리 ‘물숨’, 전국을 떠도는 커피트럭 여행자의 이야기 ‘바람커피로드’ 등 수작들과 함께였다. ‘왕초와 용가리’에는 “안동네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를 들여다보고 싶었다”는 이창준 감독의 제작의도가 설득력있게 배어있다. 쪽방 주민이 400여명인데 주변 구호·복지단체는 200여 곳이나 되는, 구호대상과 구호단체가 일종의 공생 관계를 이루는 부조리도 날카롭게 짚어냈다. 그렇다면 4년이나 걸려 만들었고 칭찬도 많이 받은 첫 장편다큐의 결산서는 어떻게 나왔을까.


우선 관객 수. 공식 상영관 유료관객만 집계하는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로는 11월 20일 현재 928명이다(이게 한국 다큐영화의 현실이다). 감독 개인의 경제적 손익은? 결론부터 말하면 집과 작품을 맞바꾼 셈이 됐다. 빚이 점점 쌓인 탓에 영화 개봉 직전에 연희동 연립주택을 팔고 홍은동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나아가 전셋집을 담보로 1억2000만원을 더 대출받고서야 겨우 빚잔치를 끝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감독을 아는 이들은 그가 ‘사골 다큐’를 찍었다고 비유한다. 감독이 자신의 뼈를 고아 만들었다는 의미다.


꼭 이창준 감독만의 일일까. 아니다. 많은 다큐 감독들도 사정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다큐 아닌 극영화 감독도 대개는 허덕이고, 문학·연극·미술 등으로 장르를 넓혀보아도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예술가는 ‘사골 예술’을 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자기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니 예술가라는 업(業)은 일종의 업보랄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예술이 많은 이에게 감동과 즐거움,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는 건 사실이니 사회가 예술가에게 도움 주는 일 또한 정당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새삼 억장이 무너진다. 문화예산을 제 것처럼 주무른 최순실씨 등의 혐의를 담은 공소장을 검찰 관계자가 ‘기름 뺀 살코기’에 비유했다는 뉴스를 며칠 전 보았다. 공소장의 충실함을 강조한 말이겠지만 나에게는 대다수 예술가가 제 뼈를 고는 사이 남의 살코기로 성대한 파티를 벌였다는 뜻으로 들렸다.


노재현중앙일보플러스 단행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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