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작곡한 것처럼 연주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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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호 27면

러시아 피아니스트 마리아 유디나(1899~1970)의 연주를 모은 박스음반.

구소련 피아니스트 마리아 유디나(1899~1970)는 어떤 사람일까. 같은 걸 두 개 가지고 있다면서 친구가 선뜻 뽑아 준 마리아 유디나의 넉 장짜리 LP 박스음반을 들으면서 관련 책을 뒤적였다.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는 브루노 몽생종이 쓴 회고담 『리흐테르』에 두 페이지 남짓한 유디나의 기억을 남겼다. 그 짧은 글에 그녀에 대한 묘사가 어지러울 만큼 다양하다. 정말이지 굉장한, 워낙 기이하다 보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연상시키는, 너무나 웅장해서, 머리가 아픈, 빗속을 걷는 사람처럼, 지나치게 연극적인, 이가 다 빠진, 부랑자처럼….


한 사람에 대한 인상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힘든 복잡다기한 형용사들을 쏟아내고는 리흐테르는 결론적으로 말했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흐테르는 악보를 중시하는 연주자였는데 그에게 유디나는 자기 기분에만 충실할 뿐 작품을 제멋대로 왜곡하는 연주자였다.


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동기생인 쇼스타코비치도 솔로몬 볼코프가 엮은 회상록 『증언』에 마리아 유디나의 기억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도 그녀를 떠올리면 얼굴부터 찡그린다. “나는 유디나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만나면 항상 무언가 불쾌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끌려 들어가곤 했으니까….”


상황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레닌그라드 기차역에서 둘이 마주친다. 반색한 유디나가 당황한 쇼스타코비치에게 묻는다. “안녕, 어디 가니?” “모스크바.” “아니, 이럴 수가! 정말 잘 됐네. 내가 모스크바에서 연주회를 열기로 되어 있는데 갈 수가 없게 됐어. 네가 대신 가서 연주 좀 해.” “내가 너 대신 어떻게 가? 난 프로그램도 모르는데.” 도망치듯 쇼스타코비치는 기차에 뛰어 올랐고 유디나는 새로운 희생자를 찾기 위해 플랫폼에서 계속 두리번거린다.


생김새가 다소 우락부락하기는 하나 그래도 여자인데, 동시대 남자들이 대놓고 싫다고 말한다. 평생 남자가 없었다. 그녀의 사랑에 대한 유일한 일화는 눈물 젖은 폭소를 유발한다. 젊은 시절 한 남자를 열렬히 사랑했는데 겁을 먹은 남자가 구애에 응하지 앉자 유디나가 권총 결투를 신청했다고 한다. 둘 중 하나는 죽자고.


남자들의 호감을 사지는 못했지만 유디나는 인기가 대단한 피아니스트였다. 레닌그라드의 한 콘서트에서 청중이 열광하자 유디나는 베토벤의 ‘32변주곡, WoO. 80’을 앙코르로 연주했다. 긴 연주를 끝냈지만 열기가 식지 않자 유디나는 콘서트홀을 도망치듯 빠져나가며 이렇게 외쳤다. “제가 고양이 생선을 굽다 왔거든요. 더 늦으면 안 돼요. 미안.” 그녀의 평생 반려는 고양이였다.


최고 권력자도 유디나의 연주를 좋아했다. 스탈린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전날 방송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음반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유디나가 연주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반은 없었다. 실황이었으니까. 그러나 없다고 대답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음반은 있어야 했고, 하루 밤 사이에 만들어졌다. 유디나와 오케스트라가 준비를 마쳤지만 지휘자들이 사시나무처럼 떠는 바람에 세 번째 불려나온 지휘자와 겨우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이날 태연했던 사람은 유디나 한 사람 뿐이었다.


얼마 뒤 스탈린이 금일봉을 보내왔다. 유디나는 답장을 썼다. “…국민과 국가에 지은 당신의 커다란 ‘죄’를 사해 주시기를 신께 기원하겠습니다.”


스탈린이 이 편지를 읽고 조금이라도 얼굴을 찌푸렸다면 유디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살자는 어쩐 일인지 눈썹도 찌푸리지 않았다. 나중에 스탈린이 다차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을 때 턴테이블엔 유디나의 음반이 올려져 있었다.


친구가 준 음반은 내용이 충실하다. 작곡가가 최고의 연주로 인정한 쇼스타코비치 소나타 2번, 23번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모차르트 협주곡 20번, 그리고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등이다. 디아벨리는 최근에 굴다와 브렌델의 연주로 익숙해 졌는데 그녀의 연주는 어떨까.


긴 여정 끝에 ‘아주 느리고 표정이 풍부한’ 31번 변주곡에 이르렀는데, 브렌델이나 굴다와는 확연히 다른 피아니즘이 펼쳐졌다. 그것은 악보 너머에 있는 소리였다. 베토벤은 영감처럼 떠오른 소리를 악보에 옮겼겠지만 오선지에 그린 음표들은 이미 원래의 소리가 아니다. 유디나의 손끝에서 울려나오는 것은 파도에 쓸린 자갈들이 몸을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 또는 가을바람에 우수수 날려가는 낙엽을 닮았다.


리흐테르는 유디나가 “작곡가에 대해 정직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유디나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녀가 “자신이 작곡한 것처럼 연주했다”고 평가한다. 결국 같은 이야기인데, 유디나가 제멋대로였다고 말하기에는 그의 디아벨리 연주가 너무나 아름답다.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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