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암살 진상 묻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백범 살해범 안두희씨(70)가 피습, 중상을 입었다.
49년 백범을 저격한 후 38년 동안 안씨가 당한 테러는 4~5차례.
가족을 모두 미국으로 이민 보내고 숨어 살았으나 항상 테러위협에 떨고 살아왔으며죽을 고비도 몇번 넘겼다.
안씨는 27일 하오 서울 시내 버스 정류장에서 백범을 흠모해온 50대로부터 테러를 당해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백범 암살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은 할말이 없으며 백범 암살의 진상은 묻지말라』고 밝혔다.
27일 하오 1시50분쯤 서울 성산동277 마포 구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씨 (70·경기도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 439의6)가 평소 백범을 흠모해오던 권중희씨 (51·무직·서울 도화1동 363의339)로부터 각목으로 머리·팔·다리 등 전신을 얻어맞아 왼쪽 머리를 8바늘이나 꿰매는 중상 (전치 3주)을 입고 인근 서부 성심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권씨는 안씨를 습격한 뒤 범행 현장에 『백범 김구 선생과 같은 위대한 민족 지도자를 암살한 역적이 우리와 같이 대기를 호흡하고 있는데도 처형은 고사하고 배후 조차 규먕되지 않고 있어 죽어가는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암살 역적을 응징한다. 권중희』라고 쓴 쪽지를 남겨두고 달아났다가 하오 8시30분쫌 자기집 앞에서 검거됐다.
권씨는 경찰에서 『14세때부터 백범을 흠모, 저격 사건 이후 안두희를 응징키로 마음먹었으며 83년부터 안씨를 추적, 지난달 안씨가 김포에 살고 있음을 확인한 뒤 부근에 셋방을 얻어 안씨에게 접근, 응징 기회를 노려왔다』고 밝혔다.
◇피습=안씨는 27일 정오쯤 김포군 고촌면 집에서 종로5가 기독교 방송국 근처 상점에서 나누어주는 알로에 안내책과 증자를 받아가기 위해 130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종로행 131번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마포 구청 앞에서 내렸다.
『서울에 간다』며 고촌면에서 안씨와 함께 버스를 탄 범인은 『나도 버스를 갈아타겠다』고 내려 함께 기다리던 중 안씨가 마포 구청쪽을 바라보는 사이 미리 준비한 몽둥이로 안씨의 왼쪽 머리를 내리쳤다.
권씨는 안씨가 피를 흘리며 인도에 쓰러지자 『반역자 너는 죽어야 한다. 수십년을 쫓아 다녔다』고 말하면서 5분 동안 안씨의 온몸을 마구 때린 뒤 행인들이 몰려들자 망원동 쪽으로 달아났다.
◇검거=범행 후 권씨는 택시를 타고 집에 잠시 들렀다가 하오 7시쯤 친구 1명을 불러내 인근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하오 7시50분쯤 집으로 전화를 걸어 기자와 형사들이 와있는 것을 확인하고『곧 집에 들어간다』고 말한 뒤 하오8시30분쯤 집 앞에서 대기중인 경찰에 검거됐다.
◇범행동기=권씨는 경찰에서 『14세 때 백범일지를 보고 백범의 사상을 흠모해 왔는데 백범을 살해한 안두희가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응징하려 했다』고 밝혔다.
권씨는 또 『특히 83년 이산가족 찾기 운동 TV 방송을 보고 남북 통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으며 백범의 통일 사상이 전적으로 옳았음을 실감해 범인 안두희에 대한 증오심이 더욱 불타 올랐다』고 말했다.
◇권씨 주변=경북 안동 출신인 권씨는 6·26백범 기일 때마다 추모제에 참석했고 틈만 나면 묘소를 찾아 참배했으며 지난해에는 모 대학에 나가 백범 사상에 대해 강연하는 등 김구 선생을 흠모해 왔다.
권씨는 또 평소 주변사람들에게 『위대한 애국자를 암살한 자가 같은 대기를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민족에 대한 대역 죄인이 천수를 누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왔고, 3년전 서울 지검에 안두희씨를 살인죄로 처벌해 달라는 진정을 하기도 했으며 신문·잡지 등에『안두희를 처벌해야 된다』는 내용의 글을 30여차례 투고하기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