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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쟁의 명분과 한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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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이 복잡무쌍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러다가는 5월 전당대회가 될지안될지, 당이 깨질지 안깨질지도 알수 없는 형편이다. 무엇보다 밖에서는 내분의 내막을 잘 알기 어렵다는 것이 복잡하게 여겨지는 큰 원인이다. 사꾸라니, 쿠데타니 하는 온갖 거친말들이 거침없이 나오는 가운데 개헌노선 투쟁인가하면 당권 투쟁인것 같기도 하고, 꼭 당권 투쟁인가 하면 노선 투쟁인것 같기도 해서 뭐가 뭔지 알수가 없다.
누가 누구 편인지 잘 알수 없는 점도 곤혹스럽다. 주류·비주류의 대립은 쉽게 이해가 되는데 두김씨간의 관계는 어떤지, 이민우총재와 김영삼고문의 관계가 어떤지는 알듯말듯하다.그리고 무엇보다 잘 모를 일은 개헌에 관한 신민당 각파의 생각이다. 개헌이 되도록 할 생각인지, 개헌방법으로는 국회를 생각하는지, 거리를 생각하는지 알수가 없다. 분명히 신민당내에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것이 무슨 게임인지, 게임 룰은 어떤지 명백찮은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게임이 진행될수록 고상한 명분이나 점잖은 체면은 깎이고 노골적인 비난과 욕설, 감정적인 대립이 늘어나고 누구 할것 없이 다같이 얼굴 상처가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개헌과 평화적 정권교체로 헌정사의 새지평을 연다는 막중한 임무 앞에서 제1야당이 보이고 있는 이런 분열과 자해적 양상은 실로 우려할 일이 아닐수 없다.
그들의 잘잘못이 그들만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헌정국과 우리의 정치질서 전반을 흔들고 그래서 국민생활과 후대에까지 영향이 미칠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정당에서 파쟁과 당권 경쟁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당발전의 활력소가 될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쟁과 경쟁이 나름대로의 한계와 명분아래 진행돼야 하는데 요즘 신민당 내분을 보면 그렇지가 못한것 같다.
대체로 보아 신민당 내분의 흐름에는 몇가지 혼동이 있는것 같다.
첫째, 책임의 혼동이다. 신민당은 당문제뿐 아니라 국정에 대해서도 자기들을 뽑아준 국민에 대해 역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최근 신민당의 모습을 보면 당문제에 바빠 국정에 대한 책임은 뒷전인것 같다.
금년들어 터진 인권문제, 농어촌부채경감조치, 열강의 한반도논의등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짚고 따지고 알고 넘어가야할 일들이 많았는데도 제대로 국회 한번 열지 못했다. 심지어 국회소집을 계파적 차원에서 다뤘다는 인상까지 주었다. 내부투쟁을 하더라도 할일은 한다는 모습을 보이는데 실패한 것이다.
둘째, 명분의 혼동이 있는것 같다는 점이다. 파리를 도모하더라도 그것이 당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할수 있어야 하고, 당리를 노리면서도 국가이익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할수 있어야 하는데 신민당의 정치행태에는 이런 명분의 포장이 약해 마치 알몸으로 뛰는 느낌이다. 주류가 비주류와 이총재에게 압력을 넣는 방식이나 징계에 저항하는 비주류의 방식을 보면 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점이 되어야할 개헌추진방식에 관한 논쟁은 뒷전이고 당내 지분다툼의 인상을 주고 있음은 문제가 아닐수 없다.
세째, 주객의 혼동이다. 두김씨가 하루아침에 소속의원 7O명의 지지서명을 받은데서 단적으로 나타났지만 신민당의 중심세력, 다시 말해 주인격은 주류며 비주류는 창당멤버라하지만 형세로 보아 곁방살이 격이다. 그런데도 당해체니, 분당이니 하는 소리는 주로 주류쪽에서 나오고 구당이니, 당고수니 하는말은 비주류에서 나오니 주객혼동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집안꼴 시원찮으면 주인이 짐을 정리해야지 뛰쳐나간대서야 설득력이 있겠는가.
이런 혼동들이 있고보니 제1야당으로서 응당 할일도 못하고 집안꼴이 엉망이 돼 주·비주류 할것없이 손해를 입고 있는게 아닌가. 내부적으로는 싸우더라도 농어촌부채경감조치 같은 정부·여당의 야심적 카드가 나오면 그에대한 당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 자주내던 성명 하나도 내지못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개헌문제에 있어서도 협상도 투쟁도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당을 정비한후 투쟁한다고 하지만 시기를 놓치면 투쟁할 시간도 방법도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내분자체는 있을수 있고, 특히 우리 야당사에서는 익숙한 일이다. 그러나 2백달러시대의 내분과 2천달러시대의 내분이 같을수는 없다. 들여다 보는 눈들의수준은 높아졌는데 과거와 같은 행태로, 또는 과거보다 더 못한 방식으로 집안싸움을 벌인다면그 벌어진 간격을 어쩔 셈인가.
쟁점이 있으면 파쟁도 해야 하고, 당권을 놓고는 경쟁도 벌여야 하지만 2천달러 시대답게 들여다 보는 국민의 눈도 의식해가며 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역대정권의 비인기성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가려지고 너그럽게 보아 넘겨졌던 야당의 허물이 점점 실상대로 투영될날이 가까와질 것이다. 이제라도 신민당은 명분과 한계가 있는 파쟁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는 전통적 야당의 복원력으로 여당의 일사불란보다 야당의 다사불란이 더욱 튼튼함을 신민당이 다시 한번 입증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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