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다케사다·히데시」교수 진단|「북한의 개방」아직도 멀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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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88서울울림픽을 1년반 앞두고 그동안 중단됐던 남북대화의 재개가능성이 엿보이는가 하면 미국의 대북한 외교관 접측허용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분위기가 크게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3일하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박재규) 주최로 열린 「북한의 군사정책과 남북한관계」 세미나에 참석한 일본의 한국문제 전문가 「다케사다· 히데시」 (무정수사) 박사(39·일본방위청 방위연구소교수) 를 만나 최근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분위기를 들어 보았다.
-미국이 최근 제한적이나마 북한외교관과의 접촉을 허용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북한의 88서울울림픽을 공동주최하겠다는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이를구실로 한반도긴장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한은 지난3∼4년동안 대 중공관계의 악화, 경제의 실패, 중공과 소련이 추진하고 있는 개방및 개혁정책에 대한 불안감등으로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이 88년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맞아 긴장을 악화시키기전에 대화의 채녈을 가짐으로써 북한의 태도를 누그러뜨리자는 것이 미국의 의도로 보인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중공이나 소련도 찬성하고 있다.
-북한의 88올림픽 공동주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대화에 응하겠는가.
▲북한은 전통적으로 군사정책을 기본으로 평화정책이라는 두개의 카드를 사용해왔다. 북한은 88올림픽때까지 다양한 제안을 해올 것같다. 물론 이것은 국제적으로 북한의 존재를 부각시켜 올림픽 공동주최라는 결과를 얻기위한 노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남북대화에 오히려 적극적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대화는 어디까지나 88서울올림픽에 묻혀버릴수 있는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상황이 자기 뜻대로 되지않을때는 군사정책을 내세워 테러나 부분적인 무력도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북한이 결코 군사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다. 북한의 대남전략의 기본은 군사정책이다. 북한이 갖고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는 군사력이다. 이 말은 북한이 전쟁을 또다시 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88올림픽 공동주최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방해하든지 효과를 반감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공동주최 명분을 민족분단을 종결시키기 위한 통일정책에 두고있기 때문에 평양측이 서울의 올림픽 단독개최에 축하의 꽃다발을 보낼수가 없는 입장이다.
-한반도 긴장완화에 관심을 갖고있는 중공과 소련의 최근 한반도정책은.
▲83년10월 랭군사태를 시점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북한-중공관계는 중공이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면서 크게 소원해지고 있다. 중공은 북한의 무기원조를 거절했다. 이러한 틈새를 소련이 비집고 들어와 지금은 북한의 전통적인 등거리외교가 무색할만큼 소련폭에 기울어져 있다.
소련의 미그-23기, 최신 지대공 미사일등의 제공과 북한의 소련에 대한 각종 군사편의 제공등은 양국간의 관계가 어느정도로 가까와졌는가를 잘 말해준다. 특히 북한이 자기영토를 소련의 군사작전지역으로 빌려준 것은 그들이 늘강조해온 주체사상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소련은「고르바초프」체제 등장이래 이같은 북한과의 밀접해진 관계를 그들의 새로운 아시아접근정책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느낌이다.
최근 「슐츠」미국무장관이 북경을 방문해 중공지도자들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논의하면서 미외교관의 북한외교관 접촉허용방침을 통고하고 이를 북경당국을 통해 북한에 전달하는 방법을 취한 것은 중공의 대북한 입장을 강화시키려는 배려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금년초 개방주의자인 호요방당총서기실각후 북한-중공관계는 다시 호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김일성의 북경방문 이야기가 나온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84년 합영법이 나온 이후 북한이 개방정책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지금도 유효한가.
▲당시에는 분명히 개방의 기미가 엿보였었다. 그러나 북한체제는 중공이나 소련과는 분명히 다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체제내에 스며들기에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
결과론이지만 북한이 합영법을 만든 것은 서방 (특히 일본) 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얻어내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 그들의 정책에 다양성이 첨가됐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개방은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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